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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정세랑 월드(팬들이 만든 정세랑 소설들이 모여 만든 세계의 애칭)>의 중독성은 엄청났다. 안은영을 읽고 나서, 곧바로 정세랑 작가의 다른 글이 궁금해졌고 여성 퀴어 단편집이라는 이유로 펀딩을 해서 받았던 <언니밖에 없네>에 실려 있는 단편 한 편을 읽고 나서도 정세랑이 더 읽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한 작가에 꽂혀서 지내는 시즌이 즐겁고, 그 시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세랑 얘기를 했으니까 한국 여성 작가에만 한정해 말하자면) 오정희, 윤이형, 배수아가 그런 시즌을 만든 작가였다. 그 다음 정세랑 소설은 뭘 읽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트위터 친구이자 실제 친구인 한 언니가 그 다음 책으로는 내가 분명히 좋아할 거라며 <이만큼 가까이>를 추천해 줬다. 덥석 사서 읽기 시작했다.
중소도시, 혹은 도시까지도 아닌 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 자신이 중소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놀러 나갈 곳은 시내뿐인 세상. 기차 한 번 버스 한 번 타는 과정들이 급작스러운 변화와 모험처럼 다가오는 세상에서. <이만큼 가까이>에서는 그런 도시 중 하나인 파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등교를 하기 위해 유일한 교통수단인 한 시간에 한 대가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 그러다가 여러 사건들이 생기며 거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친구들.
"내 생각에, 별로 좋은 나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언제 어디에 있고 싶어도 결정권이 없고, 나이가 들면 지금이 언제인지 어디에 있는지 파악을 못하니까."
"언제, 어디에."
내가 반복했다.
"시공이야.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야."
인용한 대화처럼 어린 나이란 것은 언제 어디에 있고 싶어도 결정권이 없는 나이다. 이 소설 속 친구들은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대도시에서 멀리, 파주에, “언뜻 텅 비어 보여도 알고 보면 약간 질릴 정도의 생명력이 있는 땅”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친구들 사이에서의 에피소드들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서 인도에서 파주로 급작스럽게 이사를 오게 된 주연, 주완 쌍둥이와 주인공이 맺는 관계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주연이와는 친한 친구가 되고 주완이와는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된 이후의 ‘나’가 과거의 한 시기를 회상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주완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강한 향수의 정서와 연결되며 그려진다.
[사람들은 '나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하고 일찍 예감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현재를 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그리움을 먼저 아는 종자들이 특이하게 느껴졌지만, 내 주변엔 그런 이들이 많았다.]
영화미술을 하는 주인공이 영상을 찍으며 사람들에게 느끼는 생각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향수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문단에 쉽게 공감을 할 수 있고, 또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현재 속에 현재나 미래의 일이 있는 게 아니라 과거와 시간이 뒤섞여버린 채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니까. 과거를 현재로 느끼고, 현재에서 미래의 그리움을 읽어내는 사람들이니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서, 혹시 <이만큼 가까이>를 읽을 분이라면 소설을 읽고 나서 메일의 나머지 내용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주인공은 왜 이런 부류의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주완이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건 소설 군데군데에서 어렴풋이 암시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을 일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과의 사랑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생각을 뻗어나가다 보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인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사실을 유예해두고 있거나 잊고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주완이는 언젠가 죽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그 과거에서 주완이와 함께 바로 그 순간, 언제 죽더라도 아주 소중하게 기억될 그런 순간들을 함께한다.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 보면 분리가 불가능한 사이가 될 거라고, 나는 주완이의 곁에 캐주얼하게 앉아 음험하고도 창대한 계획을 세웠다.]
언젠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가까워지기. 주완이와 주인공은 그렇게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진 사이에서 주완이는 사고로 죽는다. 복선을 읽어낸 그대로. 그렇지만 주완이의 죽음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중요한 절반은 그 가까운 사람을 잃은 주인공이 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관한 내용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절대로 극복해낼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매일매일 그 죽음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소설의 중후반부는 주인공이 주완이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일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설명 불가능한 어떤 삶을 그려내고, 그 삶을 가까이 느끼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꼭 이 슬픔이 나의 슬픔인 것처럼 함께 슬펐고 함께 아팠다.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그런데도 소설은 계속되고.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도, 살아있는 그 어떤 사람의 삶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깝게”되면서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함께 살아나간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든 가까운 거리에 있든 관계없이.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주인공의 친구 송이는 결국 파주를 떠나 미국에서 삶을 살아나가지만 여전히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소설이라는 매체는 이 소설 속 친구들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린 그 자리에서 같이 그리워해주고 그러면서도 책을 읽는 이 현재를 같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쓰고 싶은 얘기는 다 썼지만 그래도 쿠키 영상처럼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포인트들을 얘기하고 싶다.
#육체적으로 이어진 가족에 대한 회의.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 그리고 가족 외에 소중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대한 애정과 사랑.
#사랑하는 존재들을 담는 동영상을 찍는 주인공. 소설의 작은 챕터 챕터들 마다 이 동영상에 찍혀있는 그들의 모습과 대화가 글로 옮겨져 있다. 영상의 소설화라고 할 수 있는 이 부분들은 사랑하는 존재들의 현재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주연이는 출판업계에서 일하며 강한 어조로 업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주인공에게 이야기 해 준다. 소설 말미에 실려 있는 소개 서평에서 정세랑 작가님은 동화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셨다고 하신다. 주연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일들은 픽션 속 일들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고 나쁜 괴물)”그래도 책은 그런 괴물들과 싸우기 위한 무기인데, 그런 책을 만드는 회사들이 더 나쁘면 안 돼. 그 간극은 참을 수 없어. 이런 식으로 좋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싸우던 사람들이 더 지치고 나면, 부당한 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는 인간들만 남아 책을 만들 거야. 깃털 부풀리기나 하는 사기꾼들만 남아 책 비슷하지만 책 아닌 그런 걸 만들 거라고. 그런 책은 읽고 싶지 않아.”]
#주연이의 책에 대한 애정과 주완이의 영화에 대한 애정. 사랑이 깃들어 있는 어떤 애정은 보는 사람들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너무 사랑스럽다.
[주완이는 일주일 단위로 영화를 봤다. 감독별, 배우별, 나라별, 씨리즈별, 테마별, 시대별, 장르별, 원작별로 그때그때 기준을 세워 스케줄을 짰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 어떤 정서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주완이는 이렇게 영화를 보는 사람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책과 영화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도 이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