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1
울라브 하우게 지음, 임선기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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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게의 시들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세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시 같았다. 가장 단순한 언어에, 삶의 체험에서 흘러나온 신비롭고 정직하며 아름다운 세계가 담겨있다. 울라브 하우게의 시를 더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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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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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종말이 있기 보다는, 수명이 정해져 있는 인간으로선 하루하루 잠들기 전이 종말이고, 다시 일어나는 아침이 새로운 시작인 것 같다. 이런 말을 남긴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걸 안다. 자연스럽게 <아침의 피아노>속 김진영씨가 남긴 78번째 메모가 생각나고.










78

늘 듣던 말의 새로움:

"날마다 오늘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야."










이번 효도관광을 하는 내내 읽은 책은 <아침의 피아노>. 사진을 찍는 짧은 순간에 그 장면과 내가 고요히 있을 수 있었고, 책을 읽는 순간 김진영씨의 말과 내가 같이 조용히 존재할 수 있었다. 책 가장 뒤편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은 이런 내용이다. 작가는 암 선고를 받고 17개월동안 자신을 위한 사적인 기록을 쓴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도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하지만 한 개체의 내면 특히 그 개인성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 개인의 내면은 또한 객관성의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사적인 기록을 공적인 매개물인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고 싶은 변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






이 책은 내 몸이 나의 타자가 되는 순간, 타자를 사랑하는 일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다. 사랑하는 일에 이토록 넓은 의미가 있었던 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일은 기뻐한다는 것, 용기를 갖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희망한다는 것, 하루를 충만하게 채운다는 것, 기다리고 사색한다는 것, 일상을 자세하고 아름답게 본다는 것, 무엇보다도 행동. 주체의 자리에 서서 행동한다는 일을 의미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이 줄어들어간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메모 앞에서 메모에 담긴 구절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일요일 저녁은 내내 <아침의 피아노>를 타이핑하며 보냈다. 그동안, 텍스트들이 날아와 <아침의 피아노>와 다시 엮였다. 이를테면 어제 봤던 비스콘티의 영화 <폭력과 열정>이라거나, 김진영씨가 직접 옮기기도 했던 바르트의 <애도 일기>,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어떤 텍스트도 <아침의 피아노>와 맞닿아 있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책은 거의 모든 사랑을 말하는 책이니까. 






여행을 한다는 건 세상을 알고싶다는 거, 세상을 그만큼 더 사랑하고 싶다는 걸 뜻할지도 모르겠다. 여행과 삶을 꼭 떼어 놓을 필요는 없으리라. 순간 순간 내가 원하는 장소에 머무를 수 있다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지금이 가장 안전한 때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기'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힘이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는 무한한 지금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져오고 만들지 지금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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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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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월드(팬들이 만든 정세랑 소설들이 모여 만든 세계의 애칭)>의 중독성은 엄청났다. 안은영을 읽고 나서, 곧바로 정세랑 작가의 다른 글이 궁금해졌고 여성 퀴어 단편집이라는 이유로 펀딩을 해서 받았던 <언니밖에 없네>에 실려 있는 단편 한 편을 읽고 나서도 정세랑이 더 읽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한 작가에 꽂혀서 지내는 시즌이 즐겁고, 그 시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세랑 얘기를 했으니까 한국 여성 작가에만 한정해 말하자면) 오정희, 윤이형, 배수아가 그런 시즌을 만든 작가였다. 그 다음 정세랑 소설은 뭘 읽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트위터 친구이자 실제 친구인 한 언니가 그 다음 책으로는 내가 분명히 좋아할 거라며 <이만큼 가까이>를 추천해 줬다. 덥석 사서 읽기 시작했다.


 

중소도시, 혹은 도시까지도 아닌 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 자신이 중소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놀러 나갈 곳은 시내뿐인 세상. 기차 한 번 버스 한 번 타는 과정들이 급작스러운 변화와 모험처럼 다가오는 세상에서. <이만큼 가까이>에서는 그런 도시 중 하나인 파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등교를 하기 위해 유일한 교통수단인 한 시간에 한 대가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한다. 그러다가 여러 사건들이 생기며 거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친구들.


 

 

"내 생각에, 별로 좋은 나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언제 어디에 있고 싶어도 결정권이 없고, 나이가 들면 지금이 언제인지 어디에 있는지 파악을 못하니까."


"언제, 어디에."


내가 반복했다.


"시공이야.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야."


 

인용한 대화처럼 어린 나이란 것은 언제 어디에 있고 싶어도 결정권이 없는 나이다. 이 소설 속 친구들은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대도시에서 멀리, 파주에, “언뜻 텅 비어 보여도 알고 보면 약간 질릴 정도의 생명력이 있는 땅”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친구들 사이에서의 에피소드들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서 인도에서 파주로 급작스럽게 이사를 오게 된 주연, 주완 쌍둥이와 주인공이 맺는 관계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주연이와는 친한 친구가 되고 주완이와는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된 이후의 ‘나’가 과거의 한 시기를 회상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주완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강한 향수의 정서와 연결되며 그려진다.


 

[사람들은 '나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하고 일찍 예감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현재를 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그리움을 먼저 아는 종자들이 특이하게 느껴졌지만, 내 주변엔 그런 이들이 많았다.]


 

영화미술을 하는 주인공이 영상을 찍으며 사람들에게 느끼는 생각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향수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문단에 쉽게 공감을 할 수 있고, 또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현재 속에 현재나 미래의 일이 있는 게 아니라 과거와 시간이 뒤섞여버린 채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니까. 과거를 현재로 느끼고, 현재에서 미래의 그리움을 읽어내는 사람들이니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서, 혹시 <이만큼 가까이>를 읽을 분이라면 소설을 읽고 나서 메일의 나머지 내용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주인공은 왜 이런 부류의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주완이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건 소설 군데군데에서 어렴풋이 암시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을 일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과의 사랑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생각을 뻗어나가다 보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인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사실을 유예해두고 있거나 잊고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주완이는 언젠가 죽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그 과거에서 주완이와 함께 바로 그 순간, 언제 죽더라도 아주 소중하게 기억될 그런 순간들을 함께한다.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다 보면 분리가 불가능한 사이가 될 거라고, 나는 주완이의 곁에 캐주얼하게 앉아 음험하고도 창대한 계획을 세웠다.]


언젠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가까워지기. 주완이와 주인공은 그렇게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진 사이에서 주완이는 사고로 죽는다. 복선을 읽어낸 그대로. 그렇지만 주완이의 죽음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중요한 절반은 그 가까운 사람을 잃은 주인공이 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관한 내용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절대로 극복해낼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매일매일 그 죽음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소설의 중후반부는 주인공이 주완이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일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설명 불가능한 어떤 삶을 그려내고, 그 삶을 가까이 느끼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꼭 이 슬픔이 나의 슬픔인 것처럼 함께 슬펐고 함께 아팠다.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그런데도 소설은 계속되고.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도, 살아있는 그 어떤 사람의 삶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가깝게”되면서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함께 살아나간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든 가까운 거리에 있든 관계없이.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인 주인공의 친구 송이는 결국 파주를 떠나 미국에서 삶을 살아나가지만 여전히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소설이라는 매체는 이 소설 속 친구들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린 그 자리에서 같이 그리워해주고 그러면서도 책을 읽는 이 현재를 같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쓰고 싶은 얘기는 다 썼지만 그래도 쿠키 영상처럼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포인트들을 얘기하고 싶다.


 

#육체적으로 이어진 가족에 대한 회의.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 그리고 가족 외에 소중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대한 애정과 사랑.


 

#사랑하는 존재들을 담는 동영상을 찍는 주인공. 소설의 작은 챕터 챕터들 마다 이 동영상에 찍혀있는 그들의 모습과 대화가 글로 옮겨져 있다. 영상의 소설화라고 할 수 있는 이 부분들은 사랑하는 존재들의 현재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주연이는 출판업계에서 일하며 강한 어조로 업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주인공에게 이야기 해 준다. 소설 말미에 실려 있는 소개 서평에서 정세랑 작가님은 동화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셨다고 하신다. 주연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일들은 픽션 속 일들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고 나쁜 괴물)”그래도 책은 그런 괴물들과 싸우기 위한 무기인데, 그런 책을 만드는 회사들이 더 나쁘면 안 돼. 그 간극은 참을 수 없어. 이런 식으로 좋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싸우던 사람들이 더 지치고 나면, 부당한 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는 인간들만 남아 책을 만들 거야. 깃털 부풀리기나 하는 사기꾼들만 남아 책 비슷하지만 책 아닌 그런 걸 만들 거라고. 그런 책은 읽고 싶지 않아.”]


 

#주연이의 책에 대한 애정과 주완이의 영화에 대한 애정. 사랑이 깃들어 있는 어떤 애정은 보는 사람들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너무 사랑스럽다.


[주완이는 일주일 단위로 영화를 봤다. 감독별, 배우별, 나라별, 씨리즈별, 테마별, 시대별, 장르별, 원작별로 그때그때 기준을 세워 스케줄을 짰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 어떤 정서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주완이는 이렇게 영화를 보는 사람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책과 영화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도 이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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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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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내일의 연인들, 더 인간적인 말,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기적의 시대, 서로의 나라에서, 길을 잘 찾는 서울 사람들, 두 사람의 세계 이렇게 여덟 개의 단편이 실려 있었다. 모든 단편이 다 좋지는 않았다. 좋았던 단편을 꼽자면 <우리들>, <내일의 연인들>, <더 인간적인 말>, <기적의 시대>다.






<우리들>을 읽고서는 이전에 경험한 적 있던 좋지 않은 관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을 다시 쓴다는 건 전혀 다른 과정이 되리라 생각하는 인물이 인상깊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글을 완결 짓게 된다면(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이지만) 나는 그걸 연경에게 보낼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좋은 생각인지 알 수 없어졌다. 이미 그 일들은 연경에게서 아주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내일의 연인들>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그저 설명할 수 없는 대로 놔둬진다. 




[내 눈에 그 시기 선애 누나는 어쩐지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인생의 급행열차에 올라탄 사람처럼 보였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동기가 그녀를 추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인간적인 말>에서는 말에 얽매여 있는 부부가 말의 무용함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실재적인 것,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을 대화 주제로 삼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나와 해원은 오히려 관념적인 것, 우리와 먼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쪽이 더 편했다. 우리는 우주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며칠이고 떠들 수 있었지만 이모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기적의 시대>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연애 안 하는 연애 소설이다. pc통신 시절의 풋풋함과 심리적 거리가 멀어졌다 좁혀졌다 하는 과정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소설집을 다 읽고 나서 든 감상은 엄청 솔직한 소설들이라서 좋았다는 생각. 인간이 으레 가지고 있는 욕망이나 열등감이 그 일을 이야기하기 적당한 거리에서 다루어진다. 소설 속에 뭔가 화려하거나 그럴듯해 보이지만 무의미한 걸 감추고 있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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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의 섬 대산세계문학총서 66
엘사 모란테 지음, 천지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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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모란테의 <아서의 섬>은 한 소년의 고통스러운 성장에 관한 소설이었다. 소년이 어릴적부터 간직해오던 환상은 무자비하게 깨진다. 자신이 속한 세계,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이 있는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는 아무런 대의도 명분도 없는 황당한 전쟁터로 도피한다.


아서가 가지고 있던 환상 중 가장 강력한 환상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모험에 관한 환상.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남자들과의 우정만을 소중히 여겼던 아서의 아버지는 다른 남성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또다른 남성의 노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이 환상과 환멸의 과정을 제시하며 소설은 이 작은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여성 혐오의 허위와 여성을 혐오하며 이득을 갈취하던 자들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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