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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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종말이 있기 보다는, 수명이 정해져 있는 인간으로선 하루하루 잠들기 전이 종말이고, 다시 일어나는 아침이 새로운 시작인 것 같다. 이런 말을 남긴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걸 안다. 자연스럽게 <아침의 피아노>속 김진영씨가 남긴 78번째 메모가 생각나고.










78

늘 듣던 말의 새로움:

"날마다 오늘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야."










이번 효도관광을 하는 내내 읽은 책은 <아침의 피아노>. 사진을 찍는 짧은 순간에 그 장면과 내가 고요히 있을 수 있었고, 책을 읽는 순간 김진영씨의 말과 내가 같이 조용히 존재할 수 있었다. 책 가장 뒤편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은 이런 내용이다. 작가는 암 선고를 받고 17개월동안 자신을 위한 사적인 기록을 쓴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도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하지만 한 개체의 내면 특히 그 개인성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 개인의 내면은 또한 객관성의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사적인 기록을 공적인 매개물인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고 싶은 변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






이 책은 내 몸이 나의 타자가 되는 순간, 타자를 사랑하는 일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다. 사랑하는 일에 이토록 넓은 의미가 있었던 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일은 기뻐한다는 것, 용기를 갖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희망한다는 것, 하루를 충만하게 채운다는 것, 기다리고 사색한다는 것, 일상을 자세하고 아름답게 본다는 것, 무엇보다도 행동. 주체의 자리에 서서 행동한다는 일을 의미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이 줄어들어간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메모 앞에서 메모에 담긴 구절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일요일 저녁은 내내 <아침의 피아노>를 타이핑하며 보냈다. 그동안, 텍스트들이 날아와 <아침의 피아노>와 다시 엮였다. 이를테면 어제 봤던 비스콘티의 영화 <폭력과 열정>이라거나, 김진영씨가 직접 옮기기도 했던 바르트의 <애도 일기>,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어떤 텍스트도 <아침의 피아노>와 맞닿아 있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 책은 거의 모든 사랑을 말하는 책이니까. 






여행을 한다는 건 세상을 알고싶다는 거, 세상을 그만큼 더 사랑하고 싶다는 걸 뜻할지도 모르겠다. 여행과 삶을 꼭 떼어 놓을 필요는 없으리라. 순간 순간 내가 원하는 장소에 머무를 수 있다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지금이 가장 안전한 때다.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기'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힘이 없다.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는 무한한 지금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져오고 만들지 지금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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