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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우리는 낯선 사건보다 낯익은 일상을 접할 때 쉽게 이해하고 공감한다. 최근일자의 신문기사가 이해하기 쉬운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째서 낯선 사건이어야 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기록이 이리도 낯익게 느껴지는 걸까.
17p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23p “우연히 객차의 이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수용소로 들어갔고 다른 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가스실로 향했다.”
186p “그들 중 우리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에게 우리는 ‘카체트’, 중성 단수 명사일 뿐이다.”
268p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는 내내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상황, 들은 것 같은 대사, 느껴본 것 같은 울분이 머리를 스쳤다.
“키우는 개도 내보내지 않을 날씨”에 밖으로 나오는 그들과 생식독성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사업장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겹쳐 보였다.
“도둑질이 정상적인 교환 행위로 간주”되는 그곳과 탈세가 정상적인 경영 행위로 간주되는 이곳이 겹쳐 보였다.
“자기절제와 양심이 결여”되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런 결함들 덕분에 살아가는 그와 그런 결함들 덕분에 자본을 긁어모으는 이가 겹쳐 보였다.
“실험실의 그녀들”과 월가의 시위를 웃으며 바라보는 이들이 겹쳐 보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은 마치 비뚤어진 자본주의의 원형 같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쟁이 끝나면서 박물관으로 탈바꿈했지만, 비뚤어진 자본주의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인 프리모 레비는 이에 대해 충고한다. 괴물은 존재하지만 소수에 불과하여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걸, 사람을 사물이 아닌 인간으로 보고자 하는 의지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사실 <이것이 인간인가>는 두 가지 질문을 내포한다. 하나는, 군림하는 자를 향한 질문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또 하나는, 복종하는 자를 향한 질문이다. 만행 속에서 생각할 기운조차 없는 이들을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그 질문은 방향을 바꾸어 나를 겨눈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인가.
우리에게는 아직 신체적 자유가 있으며, 생각할 여유가 있다. 그러나 신체적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고, 생각할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인간인가>. 이제는 대답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