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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 자신도 인정했듯이, 이 소설은 제목 덕을 톡톡이 본 것 같다. '여인숙'이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삿뽀로'라는 극히 일본적인 단어가 주는 성적인 느낌. 그 때문에 일종의 자극을 원하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 소설. 그러나, 제목의 선정적 어감에 혹한 독자들이여, 오해마시라. 이 책은 한없이 나른하고,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난 후 마음이 고즈넉해져서 책을 꼭 안아주고 싶어졌다' 는 어느 서평을 읽고 이 책을 펴들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난 다음 과연 나의 마음이 그렇게 고즈넉해졌던가. 이 땅의 젊은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에게서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찾기란 왜 이리 어려운걸까... 하는 아쉬움뿐.
이 소설은 쌍동이 남동생을 잃은 한 여주인공의 젊은 날의 기록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후 방황하는 젊은 영혼의 이야기. 가까이는 하루끼,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작품에서 다뤄진,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이다. 쌍동이라는 상징 역서 동서고금을 통해 얼마나 많이 다루어져 왔던가... 소설 속의 주인공은 거리를 내쳐 달린다든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삶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삶 속에 찾아드는 다른 인물들과의 인연, 비현실적인 듯이 보이나 주인공에게는 확실한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고스케라는 존재 속 에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뭔가 갑갑한 틀 속에서 제대로 일을 벌리지 못한다. 각각 독특한 과거를 지닌, 그러나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인물들과의 인연도 묘사만 가득할 뿐 서사로 이어지지를 못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모호한 이미지만을 가득 품은 채 어떤 행동도 제대로 취하지를 않는 것이다. 뚜렷한 이야기 구조보다는 상징과 분위기로 소설을 이어가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 곳곳에 지나치게 넘쳐나는 상징들 역시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작가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뛰어난 표현들이 소설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정적인 묘사의 집합만으로 소설이라는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소설이 시가 아니고 소설인 이유가 있기에...
<삿뽀로 여인숙>의 마지막 장을 아쉬운 마음으로 덮은 지금, 충만한 이야기가 그득한, 그런 소설 한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