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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나이에 섭국(燮國)의 제왕자리에 오르게 된 죽은 제왕의 오자(五子) 단백. 그는 조정으로 나아가 관료들을 접견하고 그들이 올리는 상소를 비준하는 것보다 무릎 위에 올려둔 귀뚜라미 통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철없기만 한 아이일 뿐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제왕을 대신하여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그들이 바로 그의 할머니 황보 부인과 어머니 맹 부인이었다. 제왕은 그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제왕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그러한 감정을 어린아이의 무지하고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출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쪽 변경 순행 와중에 내시 연랑과의 미복 나들이에서 줄 타는 광대를 보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는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왕의 삶보다 줄 위에서 한없는 자유를 취하는 광대의 인생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어린 제왕의 마음에 광대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자리 잡는다.
독살의 위험에 빠졌다가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어느 날, 태의의 제안으로 후궁의 숲으로 나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그 날부터 새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을 기투한 존재인 새. 새의 삶은 광대의 삶과도 닮았다. 줄 위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자유를 '타는' 광대의 삶은 새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소설의 초반에서부터 미친 궁인인 손신은 끊임없이 "~머지않아 섭국의 재난이 닥칠 것이 옵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제왕은 이렇게 '재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는 궁인을 멀리하거나 내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가까이하고, 가끔씩 그의 말투를 따라하곤 한다. 이 어구가 소설 중간 중간 계속 되풀이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섭국의 앞날을 짐작케 한다. 이런 운명론적인 어구에서 비롯된 정서가 제왕의 생을 비롯해서 소설 전반의 정서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자유로울 것 같은 왕이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운명은 고사하고 사랑하는 여자 한 명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약하고 부자유스러운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할머니인 황보 부인이 죽기 직전에 내놓은 향낭에 담긴 제왕의 유서는 제왕의 삶이 한 편의 희극이었음을 보여준다. ' 장자 단문을 세워 섭국의 군주 자리를 잇게 하라.' 제왕의 삶이나 장자 단문, 그러니까 원래 제왕의 삶 모두 한 여자의 권력놀음에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었다. "이건 내가 너희 사내 놈들과 즐긴 한바탕의 농담이니라. 나는 가짜 섭왕을 만들었다. 너를 조종하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지."
그러다 결국 제왕의 자리는 원래의 제왕인 단문에게로, 아버지를 닮아 더 제왕의 모습에 가까웠던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운명의 손이 그를(단백을) 그 자리에서 밀어낸 것이다. 단백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단백은 단 한번도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원한 적도 없는데 제왕이 되었고 텅 빈 인형처럼 제왕의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밀려나게 되었고, 그리고 평민이 되었다.
줄타는 광대. 진실로 자유로운 허공의 새. 단백은 당연히 광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광대를 향한 길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걷고 뛰고 재주를 넘었다. 단단히 매어져 있는 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그 줄 위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진실한 내 그림자가 향현의 저녁 빛 속에서 점점 커지는 모습을, 아름다운 흰 새가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날개를 펴고 자유롭고 오만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저 푸르고 끝없는 하늘 위로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줄타기 왕이다. 나는새다." 광대가 됨으로써 담백은 진정한 왕이 된다. 그가 바라마지 않았던 새가 된다.
팽국이 섭국을 함락하고 담백이 옛 스승이 있었던 고죽사에서 줄 타며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권력의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에서 저잣거리, 외줄로 옮겨 온 삶. 그 파란만장한 삶을 작가는 "저잣거리의 다관에 나앉은 늙은 손님처럼 세상의 모든 일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우러을 모두 내 눈으로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랐다" 는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삶을 관조하듯 참으로 담담하게 서술했다. "나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생이란 불과 물, 독과 꿀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제왕의 삶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생인 셈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왕의 삶은 좀 정도가 더 할 뿐 불과 물, 독과 꿀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우리네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삶이란 것이 언제나 물과 꿀로만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러한 삶이 있다 하더라도 인생의 참된 맛을 느낄 수 없으리라. 그러한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삶이 운명의 손아귀에 의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이 창조해낸 삶을 그렇게 관조하면서 또 한번 꿈꾸듯 살아낸 것 같다. 우리도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그렇게 작가처럼 창조를 통해서, 또는 창조된 삶을 통해서 또 한 번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저잣거리의 다관에 나앉은 늙은 손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