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 시인선 35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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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송찬호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커다란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 수염으로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 채송화 씨는 참 작다. 꽃도 작다. 예전엔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꼭 잎과 줄기(자주색)는 쇠비름 같아서 어려서는 많이 헛갈렸다. 재래종 채송화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경희대 근처 보리밥집에서 오랜만에 화분에 심겨진 채송화를 보고, 정말 반가웠다. 채송화 같은 사람, 채송화 같은 친구, 잘나지 않아서 좋은 사람들이 정답다. 
  

개학해서 좋은 이유 중 하나, 시를 함께 읽는 날, 8월 구들장모임을 기다리며 

빈집-송찬호

지붕 밑 다락에 살던 두통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가구를 들어내 휑하니 드러난
벽들은 망설임 끝에
좌파로 남기로 결심했고
담쟁이넝쿨들이 넘겨다보던
아름답던 이층 창문들은
모두 천국으로 갔다
그리고, 거실에 홀로 남은 낡은 피아노의
건반을 고양이들이 밟고 지나다녀도
아무도 소리치며 달려오는 이 없다
이미 시간의 악어가 피아노 속을
다 뜯어먹고 늪으로 되돌아갔으니
구석에 버려져 울고 있던 어린 촛불도
빈집이 된 후의 최초의 밤이
그를 새벽으로 데려갔을 것이었다
벌써 어떻게 알았는지
노숙의 구름들이 몰려와
지붕에 창에 나무에 각다귀 떼처럼 들러붙어 있다
이따금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그들의 퇴거를 종용해 보지만 부력을 잃고
떠도는 자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 있으랴
철거반이 들이닥칠 때까지
한동안 그들은 꿈쩍도 않을 것이니

* 거실에 홀로 남은 피아노가 되기 보단, 기웃거리고 쉬어가는 노숙의 구름이고 싶은날.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 보렴 

*마음껏 게으르게 보낸 방학이 끝난다. 끝이 있어 참 다행이다. 드디어 내일부터 출근이다.
아침은 노동이 시작하는 시간,,,저녁은 시가 시작되는 시간인듯, 저물무렵, 저녁무렵, 어움이 내리는 시간을 노래한 시가 많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라, 돌아오기 위해 나갔는지? 다시 나가기 위해 돌아오는지? 오늘 저녁, 개학한 두 아이와 방학없이 출근만 한 남편에게 희고 둥근 빈 달만 줄 수는 없는 일. 아하! 식탁에 희고 둥근 빈 식기를 가지런히 차려놓으면!! 너무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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