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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ㅣ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오월 평화방송 북콘서트에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박성우 시인을 처음 뵈었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후배 시인으로, 그날 게스트로 나왔던 박성우 시인이 좋았습니다.
스스로 외모를 "제가 측은하게 생겼지만 면장 딸이랑 연애를 해 봤습니다. 면장 딸은 동네에 유일하게 피아노를 치는 소녀였습니다." , " 그동안 동경해왔던 신경림 시인 옆에서 말을 하려니깐 자꾸 헛소리를 하잖아요."하면서 자신이 쓴 시 두 편을 낭송했습니다. 아니 뒤에 삼학년은 옆에 평화방송 박용환 진행자가 낭송했지요.
'잘 부탁합니다 허명순입니다' 경상도식으론 '허맹순'이 되지요. 시를 직접 시인의 육성으로 듣는 맛이 이런 것이구나! 맛깔스러웠습니다.
냉큼 시집을 사고 사인을 받았습니다.
박성우 시인의 시집 <가뜬한 잠>에서. 두 편의 시를 적어봅니다.
봄날은 간다 /박성우
깜장양말에 깜장구두다
아코디언으로 주름잡는
여섯 악사 모두
깜장중절모에 깜장염색머리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은
평상시 노는 할머니를 차지고
행인들은 흘러간 옛노래를 따라
느티나무 봄 그늘로 흘러들어온다
손자에게 목욕가방을 맡긴
할머니가 마이크 전해받는다
잘 부탁합니다 허명순입니다
여섯 악사들은 봄날은 간다고
아코디언 주름을 접고 펴는데
잘 부탁합니다 허명순입니다,
에서 꿀을 먿은 할머니는
연분홍 치마를 놓치고 놓쳐
아코디언 반주만 봄날은 간다
중절모 사회자의 시작 손짓에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봄날은 가고
허명순 할머니는 열아홉 허명순이로 간다
열아홉 꽃망울은 복사꽃밭서 터지고
복사가지 흔들흔들 꽃잎은 흩날린다
어찌야 쓰까이 요로코롬 피어부러서,
노래 마친 할머니도
아코디언 연주하던 중절모들도
할머니 봄날 앙큼하게 더듬어보던 나도
느티나무 아래 평상도
평상시 봄날로 간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마치고 길동무가 되어 같이 간 아들이 웃어제낀 시입니다.
삼학년/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 미숫가루를 우물에 풀어 놓으면, 밭에서 일하다가 와서도, 논에 김매다가도, 과수원일을 하다가도 누구라도 퍼마실 수 있겠거니 했다는,,,밥도 하고 빨래도 하는 줄은 생각 못했다는, 삼학년은 어찌 그리 착한 마음으로 앞만 볼 수 있는 나이인지. 삼학년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