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화가의 집을 찾아서>를 읽다.

 

 

 

 

 

 

 

 

 

 

 

표지를 추가하고 보니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표지.

젬마님, 미인형이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12명의 한국화가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기.

미술계의 거장들인데도

반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고 반은 처음 듣는 화가였다.

한국미술계는 너무 모르는구나 싶었다.

 

이런저런 소셜네트워크를 최근에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각기 다 다른 세상이라는 점이었다.

페이스북이라는 세계가 있고, 블로그 세계도 있고, 알라딘 서재라는 세계도 있다.

한 세계에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이도 다른 세계에서는 무명이 된다.

다 같은 소셜세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각기 독립된 세계라는 점이

요즘 알게된 흥미로운 점이었다.

 

일제 치하에서도 천재 화가 추앙받던 이인성 화가는

술 먹고 늦게 귀가하던 중 경관에게 검문을 받을때 이렇게 소리쳤다.

"천하의 이인성을 모르다니!!"

당연히 그를 몰랐던 경관과 시비가 붙었고,

결국 그 경관의 오발탄에 목숨까지 잃었으니

한 세계에서 명성을 얻었다고 우쭐해하다보면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다.

(아니, 하려던 건 이 말이 아닌데)

 

그처럼 미술계에서는 거장들로 추대받고 있어도

세상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게 현실.

한젬마가 그들의 흔적을 좇아가는 여행기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고생담이다.

 

이 땅에 제대로 남아 있는 예술가의 집이 도대체 몇이나 되던가.

경제 논리에 의해 폐기되고 세월에 의해 개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설가 현진건의 집도 문화 예술적 의미가 없다고 해서 헐어 버리지 않았던가.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공간이라는 것 외에

무슨 문화예술적 의미가 따로 필요하단 말인가.

 

2006년에 쓰여진 글이니 거의 10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자본이 더 지독하게 지배하는 시간들을 견뎌내왔으니

지금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게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림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박수근 화백의 경우

박수근미술관이 그림과 닮은 분위기로 주변과 잘 어우러지게 지어졌지만

개관 시 박수근의 유화 작품이 한 점도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비싼 그림 값 때문이었겠지,

(주)영창의 조재진 대표가 <빈 수레>를 기증함으로 비로소 원화를 소장할 수 있게 됐고,

이어 3점의 그림들이 기부되었다고 한다.

조재진 대표는 이 비싼 그림을 기증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세속적인 나는 이 글을 읽을때 그런 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거대한 체구에 머리는 치렁치렁, 빨간 양말을 신고 귀가 들리지 않는

운보 김기창의 작품은 우리가 매일 보고 있다 했다.

1만원권에 그려진 세종대왕이 바로 그의 작품.

새삼 만원짜리를 꺼내 한참동안 세종대왕을 들여다보았다.

이 초상화가 누군가 그린 그림이란 걸 처음 생각해보던 시간이었다.

돈을 세다 가끔 세종대왕이 보이면

난 앞으로 운보 김기창이란 이름을 떠올리겠지.

내 세계는 좀 더 넓어진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