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서바이버>는 작가의 스토리가 너무나 강렬했기에
얼른 읽고 싶어졌던 책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르지 않은 신혼 생활이었다. 그런데 점점 아내가 이상해진다.
미친듯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데다, 너무나 많은 먹거리를 사느라 통장잔고가 바닥나 대출까지 일으키는 상황이 됐다.
병원을 데려가는 일도 쉽지 않았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게 일상이 됐다.
기자인 나가타 도요타카는 묵묵히 그런 아내를 돌본다. 보직을 변경하기도 하고, 휴직기를 가지기도 한다.
헌신적인 돌봄으로 아내가 나아져 다시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기대할지도 모르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자해를 하는 일도 있다가 결국 뇌까지 망가지고 말았다.
오랜 시간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아내에게 어릴적 큰 트라우마가 있다는걸 조금씩 알게 되는데,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신체적 고통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 고통을 주는 행위를 아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방‘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점점 무너져내리는 시간이 20년.
대략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이런 무거운 이야기에 비해 책은 너무나 얇고 가벼워서 놀랐다.
더욱 놀라운 건 도요타카 작가의 덤덤한 태도였다.
그 자신도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긴 시간 서로 고통받았음에도
문장은 차분하고 간결하다.
자신도 분노와 고통에 휩싸이고 그것을 드러낼 법도 하지만
시종일관 침착하게 상황을 들여다보고 간결하게 표현한다.
또한 아내와 병을 분리해서 바라볼 줄을 알았다.
괴물이란 아내가 아니라 병이라고.
그래서 쓰러지지 않고 아내를 돌볼 수 있었다고.
다 읽고 한참이 지나서도 그 태도는 여전히 경이롭게 남아있다.
돌보는 자의 말 못하는 괴로움을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걸 더 드러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아내에 대한 예의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를 지탱해준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다 읽은 후에도 종종 생각한다.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할 수 없다는 답만 나오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이 사람의 태도는 타고났던 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기에 난 그 두 사람을 종종 떠올리고,
세상에는 이런 특별한 관계도 있다는걸 생각하게 된다.
트라우마가 이제는 흔하게 쓰여지는 단어가 되어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삶을 망가뜨리게 되는지도, 또한 쉽게 치료받을 수 없다는것도
그만큼 아주 무거운 단어라는 것도 되새기게 된다.
아주 깊게 인상적이었던 문구는 ‘문제의식‘에 대한 말이었다.
‘저널리스트에게는 문제의식이 전부다.
이를테면, 어느 리더의 기자회견에 여러 언론사가 참석했음에도
한 언론사만 문제 발언을 특종으로 다루는 경우가 있다.
그 기자는 평소 인권이나 차별 문제에 예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타사 기자들은 흘려들은 발언에서도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다.
기자가 문제의식이 있는지 여부가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취재력이나 필력에 앞서,
문제를 보지 못하면 취재를 시작할 수 없다.
아내가 내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벼려준 것은 분명하다.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날카로운 감각.
예리한 문제의식.
그런 감각을 갖고 싶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인상적인 대목을 읽으면서
알라딘 서재라는 공동체를 떠올렸다.
치열하게 읽고 쓰고 나누며 함께하는 사람들이 이 공동체 안에는 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읽고 쓰면서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고,
예리하고 날카롭게 감각을 세워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공쟝쟝님의 어마무시한 글에 정희진 작가님이 댓글을 직접 남긴 것을 보고
다 같이 기뻐하는 이 공동체의 모습은 굉장했다.
(실은 알라딘서재 공동체의 서재지기 한 사람 한 사람도 내게는 스타같은 분들,
그 분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정리해놓은 리스트도 만들어두고 있다.)
그때 정말 오랜만에 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이 일렁였다.
책을 읽고 싶어졌고, 공부도 하고 싶어졌다.
몇 년 전 저 분들을 따라잡으려면 엄두도 못 내겠다 하면서 망설였는데,
긴 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고,
그 분들은 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함께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한권씩 읽으면서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쳐보는 일.
남은 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늦지 않았지.
무엇보다 이런 공동체가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는걸 떠올리면
크게 힘이 된다.
큰 자극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