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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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운 세 살이다. 내 기억에 세 살은 존재하지 않으니 나에 빗댄다면 너무도 아름다운 일곱 살쯤 될까. 더구나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

나는 내가 어려서 초능력자라고 생각했었다. 남들은 다 어리다고 하는 나이에 모르는 세상 이치가 없었고(굉장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 모르는 단어가 없었으며(이런 점에서 주인공은 나와 상당히 닮았다.), 가끔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였다.(나는 빗물이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어린 아이들의 이러한 심리상태가 무엇에 기인한 건지 전문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살았었다. 그러나 나만이 특별하다는 의식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은 태어나면서부터 3세까지의 자전적 소설이란다. 소재부터가 참신하기 이를 데 없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크다. ^^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을 가진(나도 처음엔 이 아이가 '신'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신'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초콜릿에 울음을 그치는 '신'이며, 유모가 떠난다는 말에 떼를 쓰며 울어대는 '신'이고, 그토록 싫어하는 잉어에게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신'이다. 뛰어난 언어 능력을 소유하여 모든 말을 알아듣고 이야기 할 수 있으나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에 충격을 받을까 두려워 말을 아낀다. 한 번에 한 단어씩, 그러나 빠르지 않게 이야기한다. 어른들의 기대에 미치는 만큼 보통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하는 만큼만.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직업인 '영사'(외교관)라는 단어의 뜻은 모른다. 주인공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신'의 영역 이외의 것이 된다. ^^

유쾌하고 재미나다. 삶, 신, 죽음, 언어, 쾌락, 이별, 종교 등의 철학적인 문제들이 세 살 아이의 시각으로 걸러져 명쾌하고 간결하게 정리된다. 어쩌면 세상은 세 살의 시각이면 살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이미 세 살이면 세상 이치를 모두 알게 되는데 그 간단명료한 삶을 굳이 비비꼬며 복잡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것을 읽고도 세 살 아이가 마냥 어리게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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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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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인들은 참 단순하단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단순하다보니 삶도 당연히 간단명료해진다.

그들에겐 어렵게 머리 싸매고 고민 할 것들이 많지 않다. 세 아들 중 가장 애정을 쏟으며 키웠던 큰 아들이 알고 보니 다른 남자의 아들이어도 이혼, 가정 불화, 아이의 탈선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생기지 않는다. 그동안 속고 그 아들을 키운 밥값이며 옷값이며가 손해인거고 동네 사람들이 자라대가리(중국인들은 이렇게 빗대어 말한단다.) 노릇한 것을 흉봐서 그렇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끔 불끈불끈 화가 나고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애정이 새록새록 생겨서, 흉년에 큰 아들만 빼고 식당에 밥을 먹으러 딱 한 번 간 것 말곤 문제가 없다. 그나마도 큰 아들이 그것이 섭섭해 국수 사 주는 사람을 아버지로 부르겠다며 거리를 떠돌아 들쳐 업고 식당엘 갔지만 말이다.

이것 뿐인가. 가난다하고 걱정 할 필요가 없다. 돈이 필요하면 피를 팔면 된다. 그러면 1년 내내 농사 지어서 번 돈보다 많은 돈이 한 번에 수중에 들어온다. 돈이 계속 필요하다? 그럼 동네를 바꿔가며 병원 사람이 날 모르는 곳에 가서 팔면 된다.

'허삼관'은 이렇게 산다. 삶이 내게 던져주는 그대로에 순응하며 산다. 그것을 굳이 내가 꺾어서 편히 살려 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는다. 가난하면 피를 팔고 피를 팔고나면 두둑한 돈에다가 돼지 간 볶음에 술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여유까지 허락되니 기쁠 뿐이다.
아들이 내 친자식이 아니면 어떠랴. 그 놈과 남들이 나를 친아버지라 말하지 않는 것이 속상한거지 내 핏줄이 아닌 것은 문제가 아니다.

허삼관은 단순하지만 슬기롭게 살아간다. 하루하루 사는 일이 힘들다고 하는 나의 푸념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그의 삶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문화가 틀린 중국 소설이다보니 수려한 문체도 아니고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고도 느껴지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옥의 티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삶에서 묻어나는 진한 감동이 문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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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로 돈벌궁리 절대로 하지마라
전유성 외 4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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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가볍고 재미나게 읽었던 책이다. 책 잡은 자리에서 다 읽은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음. 우울한 가을날 읽기엔 적격(?).

전유성과 기타(아~~ 다른 작가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이름 기억 안 남. -.-) 여러 명이 함께 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의 이야기. '전유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벌써 유쾌하지 않은가? 책 자체도 유쾌하다. 전반적으로 밝은 주황색 톤이고 삽화도 어찌나 재미난지 모르겠다. 그 속에 담긴 번뜩이는, 그리고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아이디어들이 척 들어맞아 즐겁기 짝이 없다. 기가 막히다면 정말 돈이 되기 힘든 아이디어들만 있다는거다.(철저하게 내 주관적인 생각. ^^)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많이 들겠더라구.

발상의 전환은 항상 즐겁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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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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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일 뿐 의자는 아냐, 연필은 연필일 뿐 지우개는 아냐. 하지만 책상이 '데스크'나 '테이블'은 아니지만 같은 것으로 보자는 약속으로 동일한 물건을 지칭하기도 한다. 언어란 것은 결국 하나의 약속이거든. 책상이 지겹고 식상하니까 그 놈을 컴퓨터라고 부르기로 맘 먹고 친구랑 약속해도 책상은 컴퓨터가 될 수 없다. 언어는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이니까.

'책상은 책상이다'는 바라보기에 따라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각각의 우화는 재미있지만, 쉽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하고 숨겨진 의도를 찾게 만든다. 나는 그 의미를 '사회성'으로 정의하고 싶다.

평생을 집에 틀어박혀 발명만 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어 그가 원하던 것을 발명했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이미 그 물건은 발명된지 오래였다.
책상을 의자라 바꿔부르다 온통 사물의 이름을 뒤섞어 버린(내 입장에서 보면 섞은 것이지만 그의 입장에선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거나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주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장애를 느끼고 만다.

기억력이 좋고 기차를 좋아했던 남자는 기차시간표와 행선지, 역명을 모두 외우고 있다. 기차역에서 떠나는 이들을 잡고 도착시간과 거쳐가는 역을 알려주며 열차를 타지 말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자기 머릿속에 있으니 알려주겠다면서. 기차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그는 기차를 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철도 공무원이 등장하여 자신이 평생을 공들여 외운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처리하는 것이다. 그 후 그가 한 일은?

각 우화의 주인공은 약간의 편집증적 증세를 갖고 있다.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이며 사회와 일정정도 괴리되어 있으나 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우리는 보통 이들을 아웃사이더라 부르며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작가만이 우리와 달리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 볼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떤 메세지도 전달하지 않는다. '사회로부터 괴리되지 말자'라든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자'라든가 '사회성은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의 어떤 메세지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있다. 놀랍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사회의 중심부에서 서서히 밀려나면서 자기의 세계로만 빠져드는...... 그리고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나를 생각한다. 사회성은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을 둘러 싼 무리로부터 형성되기도 한다. 책상을 책상으로 만드는 무리로써의 나를 고민한다. 무리에서 벗어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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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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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소비. '습관적으로'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무책임한 우리네 소비생활의 무지함.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지 않음을 녹색시민 '구보'씨는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소비생활에서 발생되는 환경파괴에 대해 소름 돋도록 섬짓한 위기감 조성과 함께.

작고 얇은 책이다. 재활용 용지로 만들어졌으며 덕분에 빛이 반사되는 반질반질한 흰 종이가 아니라 눈이 덜 피곤했다. 절대로 전문서적이 아니다. 가볍게, 그러나 모르고 써버리는 행위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정보를 제공한다. 잠깐 내용을 소개하면.....내가 좋아하는 낭만적인(?) 커피. 그 커피 한 잔을 위해 상상도 못할 양의 커피 원두가 들어가며 그 원두를 생산하기 위해 토지가 무참히 혹사(화학비료, 농약, 토지의 황폐화, 다른 농작물의 경작 불능.....)당한다는 사실. 환경을 위한다고 일회용 컵을 버리고 유리컵에 마신 후, 내가 마신 커피 양의 3배도 넘는 물로 그 컵을 닦아낸다는 충격적인 발언.

커피 하나 마시면서도 그렇게 신경 곤두세우면 세상 어떻게 사나 싶지만 작은 관심만으로 우리 환경이 덜 망가진다면, 망가지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춰진다면 해 볼만하지 않을까? 우리가 녹색시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소비생활 자체를 중단할 수 없다면 나은 방법의 소비문화를 창조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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