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상은 책상일 뿐 의자는 아냐, 연필은 연필일 뿐 지우개는 아냐. 하지만 책상이 '데스크'나 '테이블'은 아니지만 같은 것으로 보자는 약속으로 동일한 물건을 지칭하기도 한다. 언어란 것은 결국 하나의 약속이거든. 책상이 지겹고 식상하니까 그 놈을 컴퓨터라고 부르기로 맘 먹고 친구랑 약속해도 책상은 컴퓨터가 될 수 없다. 언어는 개인적인 약속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이니까.

'책상은 책상이다'는 바라보기에 따라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각각의 우화는 재미있지만, 쉽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하고 숨겨진 의도를 찾게 만든다. 나는 그 의미를 '사회성'으로 정의하고 싶다.

평생을 집에 틀어박혀 발명만 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어 그가 원하던 것을 발명했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이미 그 물건은 발명된지 오래였다.
책상을 의자라 바꿔부르다 온통 사물의 이름을 뒤섞어 버린(내 입장에서 보면 섞은 것이지만 그의 입장에선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거나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주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장애를 느끼고 만다.

기억력이 좋고 기차를 좋아했던 남자는 기차시간표와 행선지, 역명을 모두 외우고 있다. 기차역에서 떠나는 이들을 잡고 도착시간과 거쳐가는 역을 알려주며 열차를 타지 말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자기 머릿속에 있으니 알려주겠다면서. 기차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그는 기차를 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철도 공무원이 등장하여 자신이 평생을 공들여 외운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처리하는 것이다. 그 후 그가 한 일은?

각 우화의 주인공은 약간의 편집증적 증세를 갖고 있다.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이며 사회와 일정정도 괴리되어 있으나 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우리는 보통 이들을 아웃사이더라 부르며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작가만이 우리와 달리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 볼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떤 메세지도 전달하지 않는다. '사회로부터 괴리되지 말자'라든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자'라든가 '사회성은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의 어떤 메세지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있다. 놀랍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사회의 중심부에서 서서히 밀려나면서 자기의 세계로만 빠져드는...... 그리고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나를 생각한다. 사회성은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을 둘러 싼 무리로부터 형성되기도 한다. 책상을 책상으로 만드는 무리로써의 나를 고민한다. 무리에서 벗어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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