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평점 :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몇 날 며칠 썼다 지웠다를 반복 중이다.
커다란 고무망치로 가슴을 크게 얻어맞은 것만 같은 무게감.
마음 같아선 내 가슴을 울렸던 모든 문장을 옮겨 적고만 싶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
브릿마리는 늘 거기에 있었다.
남편의 아내로, 남편 아이들의 엄마처럼 보이는 보호자로.
쓸고 닦고 정리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으로, 그렇게.
예순살이 넘은 브릿마리는 편견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면 휠체어가 먼저 눈에 띄지만 휠체어가 있어서 본 것이지 편견이 있어서 바라본 것은 아니다.
여자의 짧은 머리가 자꾸 눈에 띄지만 짧은 머리 모양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니다.
브릿마리는 꽤 융통성 있고 합리적인 사람이므로 관공서가 문을 여는 9시엔 방문하지 않는다.
2분간 기다렸다가 9시 2분에 들어서는 센스쟁이. ㅎㅎㅎㅎㅎ
읽는 내내 나의 엄마가 생각났다.
본인은 합리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신여성이라고 굳게 믿는 할머니.
그러나 우리에겐 대화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불통의 대상이다.
평생을 가정 안에서 가정 주부로만 살았던 브릿마리 역시 나의 엄마처럼 꼰대에 소통이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내가 바라는 모습이 '나'라고 믿고 (편견없는 사람, 예의 바른 사람, 남을 헐뜯지 않는 사람.......), 남이 말하는 모습(사회성이 떨어진다, 유머감각이 없다)이 '나'라고 믿고 산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살던 브릿마리에게 찾아온 변화.
브릿마리는 아주 조금씩 변해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신의 모습을 알아간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브릿마리가 처음으로 농담을 던진 후,
몇 번이고 그 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는 장면에서 눈물이 울컥 솟구치는건!!!!
유머감각이 없다는 남편의 말을 진리처럼 믿었던 브릿마리가 자신도 모르게 던진 첫 농담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도 알기 때문.
예순 세 살의 브릿마리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알아간다.
버스를 탈 때 좌석에 무언가를 깔아야 앉을 수 있고,
쥐를 위해 준비하는 음식도 접시에 담아 수건을 깔아야 직성이 풀리는 브릿마리가!!!!
하얀 자동차에 파란 문 하나를 달고도 운전이 가능해지는 이야기.
브릿마리처럼 평생을 가정 안에만 묶여 가족이 원하는대로만 살았던 내 엄마의 이야기여서,
한편으론 내 이야기여서 지나치게 몰두하고 공감하며 읽었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나눠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고,
읽는 도중 수많은 메모를 해야 했고,
새벽에 자다가도 일어나 읽을 정도로 잔상에 시달렸다.
'늙어감' 과 '자아찾기' 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브릿마리 여기있다' 는
또 한 살을 먹어야 하는 12월에 읽기엔 최고의 책이었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