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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월
평점 :
정약용의 여러 여인들이 나옵니다.
대조적인 성격의 여인 하나 하나가 모두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누구의 편에도 설 수 없고, 어느 하나를 미워할 수 없는 여인들.
서슬이 퍼런 혜완.
그녀의 행동거지 묘사가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기품 있고 강단 있는 여장부같으나 가슴에 담긴 여인네의 마음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진솔.
목욕을 하지 못해 입성이 깨끗하기가 쉽지 않은데 새하얀 정약용의 동정을 보니 진솔의 지극함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진솔이 정약용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나타내는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신분의 귀천이 뭐라고.
사랑하는 맘을, 몸을 쓰는 노동으로 밖에 드러낼 수 없는 그녀가 가슴 시립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천주교가 진솔에게는 사랑하는 임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정약용의 팬이라 자처하는 나는, 진솔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었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정약용의 18년 유배 생활이 지옥같지만은 않았을 테니까요.
사랑받고 자란 부잣집 막내딸 캐릭터 홍연.
사랑스럽습니다.
홍임과 진솔을 대하는 마음이나 태도가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긍정의 기운이 한가득.
정약용이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될 홍임.
첩실의 딸이 걷게 될 운명이란 모질기 짝이 없던 조선시대.
어찌하여 이리도 영민하게 태어났더란 말이냐.
그러나 모진 운명을 빗겨
정약용이 꿈꾸었던 백성이 잘 살고 만인이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역할을 결심하는 홍임.
글을 모르는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겠다는 홍임은,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제목은 정약용의 여인들이지만 책의 상당부분이 정약용의 여인들보다 정약용 혼자만의 일생을 그립니다.
그 일생이 정조를 만난 이후에 촛점이 맞춰져, 당시의 역사적 지식이 있다면 읽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쉽고 빠른 문장이 아니어서 술술술 읽히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문장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해 저는 마지막 줄까지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우리 역사는 외면하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정약용과 정조를 모두 좋아하는 저는, 소설 안에서 읽어내야 하는 역사의 조각들때문에 맘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약용의 여인들' 이라는 제목에 낚여서 재미난 이야기가 아닐까 은근 기대했다가 뒤통수 맞았지만.
아주 맘에 드는 묵직한 소설을 만났음은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