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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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온종일 깝깝한 마음으로 지낼 때 위로받은 책이 있었으니 제목마저 가슴에 와서 박힌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진심으로 위로가 되서 일부러 여러 번에 나눠서 읽었다.


모든 분야의 순서를 정해가며 책을 읽지만 진짜진짜 의무감으로 보는 것이 시(詩)다.

함축과 비약과 비유를 넘나들어 초집중을 요하는 것도 싫고

천천히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공감은 커녕 이해도 어려워 성격 급한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런 깝깝한 시를 저자 정재찬 님이 하나하나 설명해주신다,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처럼.

선택한 시도 어쩜 이리 가슴을 후벼파는지.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복효근. 166쪽)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시도 조목조목 짚어주시며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니

행간에 담아 생략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까지 모두 보인다.

선재는 온전히 붕어빵 다섯 마리가 다 담긴 종이봉투를 가방에 넣어줬는데,

그것은 오로지 친구를 주기 위해서 붕어빵을 샀다는 것이고,

일부러 정류장에서 기다렸다가 생색내지 않고 무심하게 가방에 넣어준 거라는,

별것(?)도 아닌 설명 감동은 배가 된다.


시만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영화, 책, 심지어 방탄소년단의 노래까지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을 담아낸 모두를 아우르고

그 안에 담긴 인생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그것이 모두 내 취향과 일치한다. ㅎㅎㅎ

나의 인생책이라 부르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의 야구철학은 재독을 결정하게 만들기까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176쪽)


타석에 서서 보니 투수가 정말 너무나 멋진 커브를 던지더라.

그러면 감탄하고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볼 뿐 배트로 치지 않는다.

치고받고 이기기 위해서 하는 야구가 아니라 정말 즐기기 위해서 하는 야구, 그것이 그들의 야구철학이었다.

고 정리해주셔서 고개를 끄덕끄덕.

 


정성스레 붙임딱지 붙여가며

중간중간 고운 그림으로 쉬어도 가며

위로받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시간.

세상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면 어떻게 읽혔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주기엔 가장 좋은 책이 아닐까,

겁없이 추천할 수 있는,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JTBC 톡투유 애청자였지만 정재찬 님의 매력을 그닥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아주 그냥 푹 빠져버렸음.

방송보다 책이 훠얼~씬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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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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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백설공주, 브레멘 음악대,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제목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온전히 글로 풀어낸 그림형제 동화전집.

1059쪽짜리 책으로 어마무시한 두께지만 염려마시라.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에 당황할테니.


 

그림형제 동화전집은 그림 형제가 쓰기도 했지만 구전되는 이야기를 정리하기도 했어요.

우리네 전래동화와 비슷한 이야기들인데

얘네를 하나로 쭈욱 모아보니 우리 것과 자연스레 비교가 되어 더 재미납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신데렐라, 백설공주, 브레멘 음악대는 그나마 기승전결 구조가 뚜렷한 작품이었고

조금 손을 대긴 해도 주제도 명확했던 것이었어요.

대개의 이야기는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어서 황당하게 끝이 나고

우리네 정서인 권선징악에서 벗어나 화가 부글부글 끓습니다.


맨 처음에 시작하는 '개구리 왕자' 부터 그러한데요.

자기 공 주워준 개구리를 벽에 던져버린 못된 공주와 해피엔딩이라니!!!!!

두 번째 '고양이와 쥐' 는 더 화가 나요.

사랑하는 사이에 속여먹은 것도 모자라서 잡아먹는다고!?!?!?!!?


이쯤부터 마음을 비웁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겠거니, 이런 것이 정서의 차이겠거니.........

남을 괴롭히면 응당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상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정해진 것은 아니니까.


'불량배들'에 나오는 암수 닭은 진정한 불량배들입니다.

둘이 데이트 잘 해놓고 오리 잡아서 마차를 끌게 하더니 숙소까지 잡아서 잘 자놓고

주인장 골탕을 먹이곤 도망을 칩니다.

이런 도덕없는 짐승들, 제대로 불량배들이구나!!!!

인정.


구전동화, 전래동화는 엉성하고 어설퍼도 재미납니다.

옛날옛날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스토리가 달라져도 매번 홀딱 빠져들어 듣게 만드는 힘이 있듯,

그림형제 동화전집도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한 힘이 있어요.

아는 이야기는 아는 이야기라서,

몰랐던 이야기는 새로우니까,

알고 있었던 이야기가 조금 다르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보게 되는 책.


미안합니다, 안데르센.

나는 그림형제 동화전집이 더 재미났습니다. ^^;;

어두운 이야기도 이상하게 밝아 보이는 힘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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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개 미래의 고전 60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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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해진 마음에 잠시잠깐 위로가 되어준 책, 길 위의 개.


 

단편동화집.

강아지와 고양이와 사람에 관한 이야기.


집 나간 강아지때문에 사이가 나빠진 가족은

집 나간 강아지때문에 다시 화해하게 된다.

유난히 거친 고양이때문에 속상했던 아이는

유난히 거친 친구를 이해하게 된다.

길 위의 개를 데려다 가족처럼 키운 할머니는 그 아이가 다시

길 위의 개가 될 상황을 모르고

모든 것을 아는 아이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의 욕심에 눈물짓는다. 


짧은 동화라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특별히 가르치려 둘지 않는데 이상하게 교훈적이다.

문어체 단어와 문장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해서 아이보다 엄마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한자 어휘에 약한 요즘 어린이들이 읽으면 낯선 단어를 접하는 기회가 되겠다.

무엇보다 동물을 통해 인간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 참 좋았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다.

모두들 집에 앉아 아이와 시간 보낼 때 함께 읽으면 엄마도 아이도 맘이 따뜻해질 것만 같은 책, 길 위의 개.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친구들이 읽으면 좋을 듯.

내 감성에도 아주 잘 맞았다.

21세기 동화책엔 쓰이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의 발견은 특히 재미났음.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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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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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책 뒷면에 쓰인 이 한 마디로 정리가 가능한 책이다.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대서사"


 

내가 직접 읽어보기 전,

고등학교 필독서 목록에 사피엔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땐 화들짝 놀랐었다.

인문학 서적이라 불리는 책은 한 분야만 다루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역사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류학, 지리, 과학분야까지 다양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니 고등교육을 마치지 않은 학생들이 소화할 수 있는 책일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일.

'총균쇠'를 읽으며 쉽게 추천하긴 어렵겠단 생각을 했던 터라 사피엔스도 불안했다.


그. 러. 나.

사피엔스가 총균쇠보다 훨씬 쉽고 재미나다.

많은 배경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니 고비만 넘기면 재미나게 완독 가능하겠다.

정말 재미가 있다는 거. ㅎㅎㅎ


 

저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의 생물체 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머드와 공룡같은 대형 동물이 살던 세상에선 기도 못 펴고 살던 조그만 것들이

언제부턴가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원인을 찾고

그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되짚어 미래를 예측한다.

그 기나긴 시간을 네 개의 큰 사건인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으로 나누고

'혁명'이라 불릴 사건을 통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정리한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충격적이면서 재미난 이야기는 원숭이와 바나나를 예로 든 종교의 설명.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하나 주고 그걸 다른 원숭이들과 나눠 먹으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쳐서 먹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배고픈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도 어려울텐데,

죽은 후에 갈 수 있다는 천국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고,

줬던 바나나를 빼앗는(실제로는 스스로 양보하게 만드는) 일이 불가능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사피엔스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사피엔스라는 종은 어떻게 해서 배고픔을 참고, 죽음을 알고, 천국을 믿으며, 남에게 양보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수준을 넘어 신화를 만들어내 대규모 협력을 이뤄내고

사피엔스가 사피엔스에게 복종, 군림한다.


사피엔스는 자연의 일부분이지만 분명 다른 구석이 있었다.

다른 구석이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그들은 다른 자연 구성원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본인들이 엄마 소의 젖(우유)을 마시겠다고 새끼 소를 살해하고,

무리를 지어 사는 사회성을 가진 동물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 알만 낳게 하거나 사료만 먹게 하고,

나무를 태우고 산을 깎아 가는 곳마다 식물이며 동물을 멸종시킨다.


과학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을 넘어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바탕을 제공한다.

무기를 만들어 스스로를 전멸시킬 듯 하더니 의약품 개발로 사망률을 낮추고 우주를 넘나든다.

쥐의 등에서 귀가 자라나게 만들고

팔이 없어진 빈자리를 대신하던 의수가 뇌에 전기정보를 전달해 촉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세상.

사피엔스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되어버렸다.


이제 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자연 속의 미미한 존재였던 사피엔스가 현재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공포가 몰려온다.

저자 역시, 후기에 이런 의견을 밝혀 나의 공포가 확대해석만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중략)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588쪽) 



 

생각보다 쉽고 재미나게 읽어서 아주 만족.

그냥 편히 읽으시길.

공부하면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보거나, 나처럼 정리해서 리뷰를 쓰겠다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지만

교양으로 읽기엔 '총균쇠'보다 훨씬 수월해서 추천, 추천, 추천 가능한, 사피엔스.


나도 사피엔스지만 이노무 사피엔스를 어찌해야 하나........

걱정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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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Wow 그래픽노블
케이티 오닐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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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얇은 그림책이다.

그래픽 노블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림책 + 만화책이라 분류하겠다.

그림 한가득인 얇은 책이라고 얕잡아봤다가 충격에 빠져버린 상황.

초등학교 6학년 이상 청소년에게 추천하겠다.

뭐, 가볍게(?) 읽자면 초등학교 1학년도 읽을 수 있겠지만.  ^^;;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제목과 겉표지가 모든 걸 이야기하는 간단명료한 책이다.

탑에 갇힌 공주를, 공주가 구해주고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


여성을 백마 탄 왕자님만 기다리는 수동적 캐릭터로 그려왔던 수많은 동화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하얀 얼굴에 금발 나부끼는 백인 중심이 아닌 흑인 주인공이 등장해 인종 우월주의에도 맞선다.

용감무쌍해야 마땅한 왕자님은 심약한 성격인데 심약하다는 이유로 지적받아 사는 것이 힘들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피부색에 의한 편견을 싹 걷어버린 급진적인 동화책.

어른과 초등학교 6학년 이상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편견을 잘 꼬집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테고

저학년이 보면 편견을 갖지 않을 수 있는 바탕이 되겠다.

짧고 간결한 만화 형식이라 읽기도 편해 부담없다.

그런데 6학년에게 추천한 이유는 읽은 후 함께 이야기나눌 주제가 만만치 않아서!!???!!!!!

그리고 내 입장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아서다. ㅡㅡ;;


(스포가 시작되니 책의 마지막을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까지 읽고 끝내주시길.)



책을 읽고 근 10여 일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도 입장은 정리되지 않았다.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는 공주와 공주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공주가 각자의 삶을 알아서 잘 살았겠거니 짐작했다가 살짝 충격을 받는다.


성 역할을 깨는 방향으로 잘 나가다가, 결국 결혼이란 제도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는 결론???

오래오래 행복의 조건이 결혼이라는 결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하나.

다른 충격은 동성 결혼에 대한 자연스런 접근이었다.


동성애, 동성 결혼에 관해 나는 찬성이나 반대, 어느 쪽도 아니다.

각자 인생, 본인이 선택한 삶에 대해 남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고,

그들을 조롱거리로 삼거나 일종의 호기심으로 흉내내는 것은 경계해야한다는 정도의 생각만 있다.

그러다가 아이들 동화책에서 툭 튀어나온 동성결혼.

이토록 자연스럽고 편안한 노출이라니........... 솔직하게 말해, 당황했다.

고정관념, 우월감, 피해의식, 편견 등등등.

어느 쪽으로든 기울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노력은 노력이고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음은 확실하구나.

하는 깨달음과 고민에 빠져버렸다.


여전히 내 입장은 없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6학년 이상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함께 읽고 이야기나눠 보자고 강력 추천하고픈 책,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내 가치관을 뒤흔들어 감춰진 의식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이런 책, 정말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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