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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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흥분되는 책이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으나 책을 덮은 후 잔상이 오래 남는 책이 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책 읽기에 속도가 붙는 책이 있고,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 있다.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읽으면서 내내 흥분됐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보다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는데,

다 읽은 후에도 맘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추리소설과 일반 문학의 경계를 허문 작가로 평가받는다더니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미스테리하지만 일반 추리소설처럼 범인을 찾기 위해 이야기가 달려가지 않는다.

결말이 궁금해 속도를 내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살인의 의미고 살인은 그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일 뿐이다.

그 의미를 따르다보면 우리는 범인을 옹호하게 되고 그들이 잡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에 사연이 존재한다.

연관성 없는 그 사연은 결국 같은 맥락 안에 존재하고 연쇄살인 역시 그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암울했던 시절, 국가 권력에 의해 망가진 개인의 삶.

침묵하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가 나서 복수하기 시작한다.

 

범인은 누구일까?

장기국을 살해한 그가 범인일까?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장기국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안간 것은 아닐까?

죄없는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눈감은 국가가 범인은 아닐까?

'법'에 의해 복수를 금지당한 사람, 그들은 힘없이 당하기만 해야 할까?

수많은 질문을 던진 후 코뿔소를 보여주마고 약속한대로 코뿔소를 보여주니 기대하시라.


샛별회라는 조직사건.

암울하고 구태의연하다고 외면받기 쉬운 정치소설이 추리소설의 옷을 덧입으며 빛이 난다.

코뿔소가 등장하지 않는 코뿔소 이야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미명아래 수없이 행해진 국가권력의 폭력을 다룬 코뿔소를 보여주마.

코뿔소의 뿔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자란다고 한다.

끝없이 자라며 나타내는 뿔의 방향성.


책이 아니라 공연이었다면 주저없이 기립박수를 쳤을 것이다.

실제로 다 읽은 후 박수를 쳤다는 거.

내가 읽은 한국 추리소설 중 최고!!!!!!​ 

그냥 내가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도 단연 최고!!!!!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에 정당한(?) 이유를 들이대는 점, 

"묻지마" 전개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점,

시간과 역사라는 이름 속에 묻힌 개인의 상처와 고통을 담았다는 점..........

하나하나가 전부 내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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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하자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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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상 수상자 이광재 작가의 신작 수요일에 하자.

책을 선택하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수요일에 하자는 혼불문학 수상자의 작품이라는 이유가 100%.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스타트.


 

이야기 초반 몰입도 쌍엄지 척!!!!!

내가 참말로 좋아했던(과거형인 것이 슬프다만. ㅠㅠ) 박민규 작가 필이다

블랙코미디, 자조 섞인 유머 코드.

병실에서 부르는 송창식의 노래는 감히 최고의 장면이라 하겠다.


병실에 누워있던 사람과 노래부른 그 사람이 밴드에 합류한다.

'수요일에 하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으므로 내 맘대로 상상 시작.

밴드에 합류한다니 당연히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했다가 그들의 자식이 대학생이라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밴드라고 하자 등장인물이 젊은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편견과 선입견에 다시 당황하고. ㅡㅡ;;


중년의 그들은 내세울 것이 정말로 하나도 없다.

번듯한 직장은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가정을 가진 이도  없다.

과거에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으로 밥벌어 먹을 수 없어 슬프다.

과거에 좋아하는 음악을 하느라 세상에 내놓을 이력이나 경력이 없다.

나이크클럽 무대를 전전하는 것이 그나마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과 세상이 말하는 '잘 산다'는 것은 다르다.

중년이 되면 적당한 크기의 집과 자동차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처럼 말하는 세상.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수많은 인생은 그래서 좌절한다.

나만 실패한 것 같고, 나만 불행한 것 같아서.


그래도 그들은 살아간다.

세상이 또 나를 속이고 배신해도.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이므로.


수요일에 하자.

적어도 수요일만이라도 해보자.

퍽퍽한 세상살이 가운데 수요일이라도 한숨돌리며 좋아하는 거 하면서.

뭐라도 수요일에 하자.

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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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
윤정인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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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점' 이란 공간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거나 실현된 꿈의 공간이다.

물건을 팔고 사는 '가게'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막연한 동경과 실현된 꿈의 공간을 직접 발품팔아 찾아다닌 이야기.

당신에게 말을 건다가 동아서점 혼자만의 이야기라면 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은 온동네 서점 이야기라 하겠다.


내가 가서 봤던 곳도 있고,

소문으로만 듣던 유명한 곳도 있고,

한 번 가봐야지 맘에 두었던 곳도 있다.


헌책을 파는 곳도 있고,

참고서, 문제집까지 파는 동네의 흔한 서점도 있고,

문화운동이라 불러야 마땅할 활동을 펼치는 서점도 있다.


건축, 인테리어 전문 서적만 판매하는 곳도 있고,

사진 전문 서적만 판매하는 곳도 있고,

문학작품만 판매하는 곳도 있다.


서점의 인지도에 따라, 서점의 종류에 따라, 판매하는 책에 따라 내 입맛에 맞는 서점을 골라 찾을 수 있는 재미.

주소까지 친절히 남겨주셨으니 직접 나서도 좋겠다.

직접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 가겠다는 마음 하나로도 흡족한, 보물지도같은 책.


책들이 머무는 공간 여기저기를 다니며 쓴 글이라 그런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고 작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도 많이 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헌책방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헌책방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올해 휴가엔 반드시 가보리라 맘먹은 인디고 서원은 읽는 내내 흥분과 전율에 몸서리를 쳤다.

여기가 좋고 저기가 좋다는 영업방식이 아니라 읽는 이들에게 판단을 맡겨버린 덤덤한 안내서, 참 좋다.


특히, 책들이 머무는 공간 주인장들이 추천한 책 목록이 아주 맘에 들었음.

가보고 싶은 서점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한가득 만들어주셨음에 감사해야 할까? ㅎㅎㅎㅎㅎ


햇빛 좋은 봄과 가을엔 어김없이 꺼내들고 뛰쳐나가고야 말, 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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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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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들고 나선 책이다.

시간 날 때 짬짬이 읽기에 안성맞춤인 에세이 아니겠는가.

만화 보노보노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라니 부담도 없다.

 


나는 공황장애가 의심되는 비행기공포증을 갖고 있다.

내가 비행기가 너무 무섭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비행기 이륙할나도 무서워",

"짧은 시간만 견디면 좋은 거 보니까 견뎌",

"괜찮아질거야"...........

병원엘 가야겠다 생각할 정도니 단순한 두려움의 수준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이해하지 않고 그들 입장에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불사하고 나선 길.

공항에서 처음 펼친 보노보노의 이야기는 곤란함에 대한 것이었다.

누구나 곤란하고, 곤란함은 결국 끝이 날테니 안심하고 곤란하라고,

위로는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받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위로라고 말한다.


첫 장부터 넉다운되고 만다.

시작부터 점쟁이처럼 내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꺼내더니 마지막까지 정신차리지 못하게 두들겨 댄다.


친구를 만나고 온 얼굴을 보면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단다.

보노보노는 '금세' 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러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치명적인(?) 사람이 아무나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노인들과 한 약속은 잊는 것이 아니라고, 노인들에게는 "앞으로" 보다 "지금"이 중요하다고 알려준다.

엄마는 대체 언제부터 엄마였는지 궁금해 하는 작가 덕분에 엄마이면서 자식이기도 한 '나'를 한없이 돌아본다.


보노보노가 이런 만화였던 것이야?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라고?

나는 보노보노처럼 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보노보노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그저 보노보노를 알게 되어 감사할 따름.

작가 김신회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보노보노처럼 사는 것의 의미도 몰랐을테지.


별 대사도 없는 네 컷짜리 만화가 가슴을 찡하게 울려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신변잡기 나열의 에세이가 아니다.

가슴을 치고 뒤통수를 치고 어깨를 토닥인다.

평소라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이 책 너무 좋아~' 라고 촐싹대고도 남았을텐데,

이렇게 말하면 책이 가벼워 보일까봐 말을 아낄 지경.


만화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기가 힘들었던 아쉬움이 있었음.

노안이 시작된 것인가. ㅠㅠ

그래서 더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았던 것일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쌍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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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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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한 바로 그 상.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엘리너 캐턴의 데뷔작 리허설.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책 소개를 보면 '학교에서 벌어진 섹스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맨부커상 수상작가 아니더냐.

10대 청소년 이야기라고 해서 녹록하고 만만하게 슬렁슬렁 넘어가지 않는다.

치밀한 심리묘사는 없다.

이야기 전개가 무겁지도 않다.

만연체의 긴 문장을 사용하지도 않고 오히려 대화로 사건이 진행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소설'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책 전체를 끌고 가는 큰 틀은 학교에서 벌어진 교사와 학생의 섹스스캔들, 연극 준비, 섹소폰 강습이다.

큰 틀은 분명 존재하는데 마땅히 사건이라 부를 것이 없다.

비슷비슷한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인상에 남는 캐릭터도 없다.

그렇다고 무난한 아이도 없으니 흐리멍텅한 듯 자기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사춘기 아이들 바로 그 자체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야기가 요일과 월 단위로 진행된다는 것.

시간이 등장하면 추리소설 좀 읽었다는 사람은 긴장하게 된다.

분명, 이것이 큰 단서가 되기 때문.

그러나 리허설은 긴장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시간 흐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같은 요일이 반복되기도 하고 갑자기 몇 달이 지나가기도 한다.

어제같은 오늘, 또 어제같은 오늘, 다시 어제같은 오늘을 살았는데 정신차려보니 몇 달이 훅 지나가버린 우리네 시간처럼 말이다.


연극을 준비하고 오디션을 보는 그들.

연극을 위해 오디션이 필요했고 리허설도 필요했다.

연극이라는 무대에 올리는 것은 과장되고 마구잡이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연극의 리허설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리허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준비하는 연극이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나

오디션 과정에서 가장 내밀한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리허설과 실제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렵지 않게 읽힌다.

이해는 쉽지 않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설령 10대 청소년이라 해도 성인이 되기 전의 리허설은 아닌 것이다.

그 순간 자체가 삶이고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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