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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평점 :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한 바로 그 상.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엘리너 캐턴의 데뷔작 리허설.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책 소개를 보면 '학교에서 벌어진 섹스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맨부커상 수상작가 아니더냐.
10대 청소년 이야기라고 해서 녹록하고 만만하게 슬렁슬렁 넘어가지 않는다.
치밀한 심리묘사는 없다.
이야기 전개가 무겁지도 않다.
만연체의 긴 문장을 사용하지도 않고 오히려 대화로 사건이 진행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소설'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책 전체를 끌고 가는 큰 틀은 학교에서 벌어진 교사와 학생의 섹스스캔들, 연극 준비, 섹소폰 강습이다.
큰 틀은 분명 존재하는데 마땅히 사건이라 부를 것이 없다.
비슷비슷한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인상에 남는 캐릭터도 없다.
그렇다고 무난한 아이도 없으니 흐리멍텅한 듯 자기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사춘기 아이들 바로 그 자체다.
책 읽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야기가 요일과 월 단위로 진행된다는 것.
시간이 등장하면 추리소설 좀 읽었다는 사람은 긴장하게 된다.
분명, 이것이 큰 단서가 되기 때문.
그러나 리허설은 긴장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시간 흐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같은 요일이 반복되기도 하고 갑자기 몇 달이 지나가기도 한다.
어제같은 오늘, 또 어제같은 오늘, 다시 어제같은 오늘을 살았는데 정신차려보니 몇 달이 훅 지나가버린 우리네 시간처럼 말이다.
연극을 준비하고 오디션을 보는 그들.
연극을 위해 오디션이 필요했고 리허설도 필요했다.
연극이라는 무대에 올리는 것은 과장되고 마구잡이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연극의 리허설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리허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준비하는 연극이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나
오디션 과정에서 가장 내밀한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리허설과 실제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렵지 않게 읽힌다.
이해는 쉽지 않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설령 10대 청소년이라 해도 성인이 되기 전의 리허설은 아닌 것이다.
그 순간 자체가 삶이고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