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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 맛, 공간, 사람
크리스토프 리바트 지음, 이수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은 먹는 곳에 쓰인다.
먹는 일엔 얼마를 써도 아깝지 않고, 맛나다고 소문난 것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길은 전혀 멀지 않았다.
그런 내가 '레스토랑에서' 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을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읽는 거다.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읽은 결과.
내가 생각했던 그 책이 아니더라.
쉽고 가볍고 재미나게 읽으려다가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
반전이라면 몸서리치게 좋아하는데 이건 반전도 아니고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
저자가 맨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레스토랑의 개념을 지나치게 개방적으로 잡았다고.
이 말이 정답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하는 일을 넘어선 역사와 사회를 투영했고,
책의 구성 역시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카테고리를 묶는 방식이 아니라 열린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읽기가 쉽지 않다.
내용을 떠나 구조가 조금 달라졌다고 읽기 어렵다 느끼는 나의 길들여짐에 놀라움과 반성을 안고 출발.
초반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구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프랜시스 도너번,
이름을 바꾸기 전 조지 오웰도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사르트르도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카테고리를 묶자면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사람들" 이라고 하면 좋겠지만 묶여있지 않다.
심지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1-2-3-4)-(1-2-3-4)-(1-2-3-4) 방식의 구조.
어떤 이는 "유명인이 레스토랑에서 겪은 일" 이라고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게 만든 열린 책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공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넓게 말하자면 '사회'로 볼 수도 있겠다.
레스토랑에서조차 인종차별이 있었고, 레스토랑에서 백인과 똑같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도 투쟁해야 했던 공간의 아픔을 전한다.
맥도날드의 등장은 직원들의 획일화된 노동은 물론 손님들마저 정형화된 태도를 갖게 만들었고,
미슐랭 별점이 등장하며 더이상 레스토랑은 '요리사/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결정하는' 곳이 되었다.
레스토랑에서 맛난 거 먹고, 분위기를 즐기는 - 가볍고 재미난 걸 기대하면 오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일하던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는 사실상 미래에서 온 외교사절" (270쪽)이라는 구절이 가슴아프게 만드는 책,
레스토랑에서.
이젠 레스토랑에서 밥 먹을 땐 여러가지 잔상에 시달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