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작품이 되다 - 밥장의 실크로드 예술 기행
밥장 지음 / 시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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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관련 책을 부러 피한 것이 쫌 된다.

지금처럼 해외 여행이 흔하기 전부터 즐겨 읽던 분야라

아무리 새롭게 써도 새롭게 읽히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까.

부러 피하고 피했던 분야인데 간만에 선택한 여행 이야기 - 여행, 작품이 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ㅎㅎㅎㅎㅎ



 

저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

글씨도 그림같이 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춤 추는 사람과 음악하는 사람이랑 팀을 이뤄 실크로드 여행을 떠났다.

텔레비전 방송 촬영을 위해서.

춤 추는 사람은 여행지의 춤을 배워서 추고,

음악하는 사람은 여행지의 음악을 배워서 연주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 외 나머지를 모두 한다는 설정. ㅋ

그래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말을 타고 폴로를 배워야 하는데........

말 가격이 너무 비싸 행여나 말이 다칠세라, 아무도 말을 타라고 하지 않더란다.

그래서 그림만 그렸다는 이야기.


여행지의 그 무엇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영하 10도 날씨에 꽝꽝 언 수박을 대접하는 악기 장인은

악기가 잘 팔려서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없다며 악기 값을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 하고,

손톱 밑에 낀 때가 머리카락만큼 까맸다며,

갠지스강은 어머니강답게 쓰레기, 오물, 각종 똥, 오줌까지 모두 삼킨다며,

인도의 분위기를 전한다.

작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도, 비난하지도 않고 본 그대로를 전해서 오히려 믿음직스러운 여행기.

참 좋다.             



 

그림도 독특하다.

책 마지막에 그림의 재료와 어떻게 완성했는지 설명 첨부,

여행지에서 쓴 글도 같이 첨부했는데,

이것이 진실되고 성실하게 보이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실사 사진은 어찌나 투박하던지.

웃음이 절로 난다. ㅎㅎㅎㅎㅎㅎㅎ



 

여행지의 풍광, 사람에 찬탄하거나,

깊은 사색에 빠져 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삶의 방향을 잡거나,

새로운 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가.

그 과정에서 난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여과없이 드러내, 몹시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깨달음은 책을 읽는 독자가 얻는 것.

그 깨달음은 여행지의 사람들이 직접 전하는 것일 뿐.


"이란에서 음악은 정치적인 이유로 무려 300-400년간 금지되었죠.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모든 이란의 음악가는 투쟁가입니다. 피눈물이 음악가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말한 피눈물을 그대로 옮기면 '심장이 마시는 피' 였다. (115쪽)

라고 쓴 후, 이란의 음악가 얘기는 끝난다.

감동이든 분노든 깨달음이든 뒤에 따를 감정은 읽은 니가 알아서 해라....... ㅎㅎㅎ


참 좋았다.

여행 자체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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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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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걸리버 여행기. ㅠㅠ

서당개처럼 여기저기 얻어 들은 풍월로만 익숙했던 책.

방대한 내용과 총기를 잃어가는 두뇌 덕분에 일부분은 분명 잊겠지만,

그래도 읽었다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음.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에 흘러들어간 걸리버의 모험을 다룬 어린이 동화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거인국까지만 제한해서 번역이 될 정도로 간섭을 받았다고 알려진 풍자소설.

풍자소설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세계사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무엇을 풍자했는지 알 길이 없으나

걸리버 여행기는 배경지식이 없어도 무언가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걸리버와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하거나 걸리버가 처한 상황으로 직접 드러내기 때문.

게다가 개인, 국가, 권력집단, 정치, 철학, 종교를 넘나드는 문화까지 비판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

저자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 없을테니, 책의 출간이 자유롭지 않았음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면서 재미도 있으니 이 일을 어쩐다.


내가 재미있어 하는 부분은 요런 거.

걸리버는 영국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며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서술한 나라들은 이민단에 의해 순순히 정복되고, 노예가 되고, 내쫓기거나 학살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 내 보잘것없는 생각으로는 그런 나라들엔 금, 은, 설탕, 담배가 풍부하지도 않아

우리의 열정, 용기, 관심의 대상으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360쪽)

영국과 관련없다는데 암만 봐도 영국 얘기고,

내쫓고 학살하는 거면 나쁜짓 한다고 욕하는 거 같은데

열정과 용기라 표현하니 칭찬같기도 한 - 얼르고 뺨치기 전법.

조너선 스위프트 이 양반, 천잴세!!!!! ㅎㅎㅎㅎㅎㅎㅎㅎ


걸리버는 총 네 개의 나라로 여행을 다녀온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소인국(릴리펏)을 시작으로 거인국(브롭딩낵), 여러 섬 나라(라퓨타), 말의 나라(후이늠국)까지.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긴장하고 피곤한 법인데 걸리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서도 잘 지낸다.

15cm 크기의 왕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가,

손가락 끝만 간신히 잡을 수 있는 크기의 거인 여왕 발에 입을 맞추겠다 이야기할 수 있는 적응력 최고의 처세술가라고 봐도 좋겠다.

그런 걸리버가 후이늠국을 다녀온 이후 오히려 자신의 세상에서 지내기 어려워 한다.

'인간' 이 아닌 '야후' 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어진 것.

인간은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야후는 악덕과 교만으로 넘쳐나는 존재로,

걸리버는 야후에게 적응하는 생활을 보여주며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소인국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이었다.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라퓨타 역시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며

검색 포털 사이트 야후도 걸리버 여행기의 야후에서 따왔다고 나는 믿고 있다. ^^;;

혀를 내두를 상상력과 치밀함으로 중무장한 걸리버 여행기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고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지만 정작 책은 읽히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 한가득.

두루두루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구나.

 

 

오타만 아니었으면 정말 최최최고였을 책.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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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 - 1996 보스턴 글로브 혼북 대상 수상작 상상놀이터 8
애비 지음, 원유미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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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는 암컷 생쥐다.

숲에서 사는 파피네 일족은 부엉이 오칵스의 통제 아래 있다.

들판으로 이동할 때조차 먼저 오칵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대신,

쥐를 잡아먹는 고슴도치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명목.

고슴도치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파피 아버지는 부엉이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고 그 믿음을 자손에게 가르친다.

의심이란, 고개도 들 수 없는 상황.


부엉이 오칵스에게 눈 앞에서 친구를 잃은 파피의 두려움,

늘어난 가족으로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파피네 가족.

이사를 준비하며 부엉이에게 허락을 구했으나 일언지하 거절당한 막막함.

결국 파피는 홀로 이사 예정지인 뉴하우스로 떠나게 된다.


파피네 가족은 고슴도치가 쥐를 잡아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엉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았음에도 부엉이가 아닌 고슴도치를 두려워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사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그들.

규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는 그들.

부엉이의 안정적인 먹이 공급을 위해 쥐들의 이동을 막지만 의심조차 못하는 그들.

실체없는 믿음을 대를 이어 가르쳐 신념과 확신으로 전승하는 그들.

결론적으로 파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만!!!!

나는 파피가 아니라 "그들" 만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1937년 생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이 '민중'이 되고 '시민'이 되기 위해 목숨을 내놓던 시절을 오롯이 살아냈겠구나.

지금은 그런 시절도 아니건만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 시절엔 영웅이라도 나왔지........


파피가 흔히 말하는 영웅적 자질을 갖추고

세상에 맞서 불합리함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나섰더라면

오히려 아무 감흥도 없었을 것 같다.

너무 평범하고 겁 많고 등 떠밀리듯 살기 위해 길을 나섰기 때문에 마음을 흔든다.

견고한 그들의 벽을 뚫고 나온 평범함과 미약한 힘.

그런 힘이 모여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리라.


동화책인데 아이들 입장이 아닌 - 온전히 내 책으로 읽었다.

모험 이야기면서 변화를 이끌어낸 용기있는 인물을 다뤘으나 가슴이 묵직했던, 파피.

초등 고학년 이상이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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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최유리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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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울대 출신이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 이라는 간판이 갖는 위력은

굳이 서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실감할 수 있는 막강 파워 아니겠는가.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막강 파워를 등에 업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정규 임용에 떨어지는루저(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의 삶을 살았던 저자는 겉 모양새를 꾸미는 일로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제목에서 말한 샤넬백이 상징성을 갖는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쇼핑몰 사장의 샤넬백을 보며 탐냈던 경험이기도 하다.

욕심을 내서 장만한 샤넬백.

그런데 명품 가방이 사람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도 아니고,

잠깐의 위안을 위해 또 다른 쇼핑 욕구만을 불러올 뿐이다.


그리하여!!!!!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정규 임용에 탈락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과감히 접고

좋아하는 "옷"을 찾아나서기로 한 것.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중간쯤 위치한 책.

개인의 이야기면서 방향을 제시하고 행동의 변화를 권한다.

채워지지 않는 삶의 욕구, 찾을 수 없는 존재의 의미, 인생의 허무함을 쇼핑으로 달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도 좋을 책.

일평생 명품 따위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길을 걷지 못한 상실감, 좌절감은 깊이 공감했음.


쥐뿔, 가진 거 하나 없이, 오만방자하게 살았던 나의 청춘을 돌아보게 했던,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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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2 : 너를 위한 시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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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다만, 금전적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운영자도 온조 혼자가 아니라 이현, 난주, 혜지가 합류했다.

책을 읽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등장인물 이름까지 기억날 정도로 잘 읽었던 책이라서 그랬나, 어찌나 반갑던지.

아이들 이름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수학을 잘하는 혜지는 자신의 시간을 수학공부 가르치는 일에 쓰겠다고 판다.

수학공부가 하고 싶은 사람은 혜지의 시간을 사고 자신의 시간을 다른 일에 파는 시스템.

그런데 시간을 파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자신이 잘 하고, 자신있는 일을 내놓는 것이다.

내가 잘 하는 일로 시간을 쓰면서 얻는 기쁨과 깨달음.

그것은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이 모여 '나'를 만들고 '인생'을 만든다는 걸 배우는 시간.

서로의 시간을 팔고 사며 '함께' 사는 법을 알아가는 건 시간을 파는 상점의 보너스다.


1권에서 "시간" 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2권은 '시간' 을 어떻게 써야하는가에 대해 다룬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떻게" 라는 구체성으로 접근하는데다

학교 보안관 해직 문제로 재학생과 졸업생이 나섰던 실화가 중심 사건으로 버티고 있어 1권에 비해 쉽게 느껴진다.

에세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고픈 이야기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직접 하는 것도 편히(?) 읽히는 요인이고.


철딱서니 없는 난주의 이현에 대한 짝사랑은 여전히 진행중인데,

이현의 감정이 슬슬 드러나면서 묘한 기류를 형성하는 것이 은근 재미나더라는 거. ㅎㅎㅎ

로맨스라면 흘겨봤는데 이상하게 이뻐 보여 제대로 핀트 빗나갔던, 시간을 파는 상점2.



< 덧붙임 >

현재의 시간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소년이 읽으면 좋은 책이지만

두꺼비 서식지를 지키려는 온조 엄마와

숲속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아저씨를 보며

"산다" 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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