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 탐사와 산책 14
신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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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정일은 걸어서 우리나라의 속살들을 두루 다녔다.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등 우리나라 주요한 강을 죄다 걸어서 따라갔다. 그리고 옛길인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도 도보로 답사했다. 400여 개의 산을 올랐으며, 우리 땅 1만 2000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한다.
한 강을 따라 어떠한 역사와 사연이 있는지는 사실 가보지 않고도 알 수 있고 정리할 수도 있다. 강을 따라 걸었다고 책에 쓸 만큼 역사적 지식을 얻을 수야 있겠는가. 가기 전 혹은 다녀오고 나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뒤적여 확인했을 것이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신사년 4월 초이레’부터 그해 늦여름까지다. 여섯 달에 걸쳐 한강 514km를 따라 걸은 것이다. 물론 구간 별로 끊어서 걷느라 여섯 달이지, 실제 날 수로 따지면 16일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흐르지만, 어찌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겠는가. 우리네 세월도 흘렀고 강의 세월도 흘렀다. 물은 그치지 않고 흐른다지만 그 모습이야 어디 그대로이겠는가? 사라진 물가의 마을들도 있을 것이고 생태가 바뀐 곳도 있을 것이고 오가며 만났던 노인네들 가운데 이생에 없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공사 중이던 정선의 규석광산은 어찌 되었는지, 2005년을 목표로 수질정화사업 중이던 팔당댐은 물이 깨끗해졌는지.
이 책에서 이렇듯 강물과 세월의 흐름이 보이는 것은 발로 걸어서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곁에 있어보고 눈길을 주고받아봐야지 속내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자동차로 하루 만에 가서 어떤 한 곳만 본다면 한 공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머문 시간 속에 갇혀 있게 될 것이다. 때문에 강을 끼고 일어난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한 것보다 발품을 팔면서 신사년 현재의 강가 삶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고래의 일보다 지금의 일이 유속이 더 빠를 법 아닌가.

전문 사진가의 사진이 아니니 사진이 눈길을 끌지 못한다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웹에서 퍼다가 쓴 듯한 몇몇 사진은 상태가 불량이고, 사회과부도에서 가져다 쓴 듯한 지도에다가 풍경 사진을 손톱만 하게 배치한 점 등등. 무엇보다도 한 손에 잡히지 않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양손으로 펴들고서야 볼 수 있는 판형이 때때로 화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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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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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서평들이 실린 잡지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서평이 눈에 띄어 빌려 본 책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띄엄띄엄 나뭇잎들이 끼워져 있다. 아마 대출해간 누군가가 끼워놓았나 보다. 2006년 7월에 펴냈으니 오래전에 끼어놓은 것은 아니겠다. 아직은 완전히 책장과 하나되지 못하고 약간 물기가 덜 빠진 정도로 마르고 퇴색한 나뭇잎과, 낡고 낡아 허물어져 내리는 아바나의 식민지풍 건물과 쿠바 사람들의 여유로워 보이는 인상이 어울린다. 2006년에 출간되었으나 그 속은 몇 십 년 전의 느린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없음일 것이다. 희망이 없는 게 결국은 절망일지도 모르겠다만. 이 세계에 커다란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아닐까 두고 보았던 것이 1990년대 초반에 무너지고 더 이상 가야 할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지켜오던 이상은 현실과 일정정도 타협하고 있다. 쿠바의 이중경제는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희망을 유지하기 위한 타협이면서 동시에 실험이 아닐까. 두 가지의 경제체제 가운데 개발과 편리의 이상을 따르는 순간 그나마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빨리 가고 싶지는 않다. 천천히 가더라도 이 지구가 지속가능하다면 그것이 선택해야 할 정치철학이 아닐까. 느리게 가더라도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가져야 할 것들을 지켜가면서 점차 발전하는 게 지구 생물체로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너무 거창했나? 낡은 식민지풍의 건물이 수도를 차지하고, 밥솥 배급 받는 일이 가끔 있는 일이라 해도, 나라에서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고, 극단적인 부의 격차가 없으며, 사람들에게 혁명, 승리, 동지 그리고 인간과 같은 친근하나 생소한 의미의 단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신자유주의로 치닫는 사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나는 그저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말레콘의 콘크리트 방파제 둔덕에 누워 태평스럽게 잠에 빠진 사람들 틈에 끼여 오수나 즐겼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 시간에 둔덕에 누워 낮잠을 즐긴다면 뭐가 이상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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