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서평들이 실린 잡지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서평이 눈에 띄어 빌려 본 책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띄엄띄엄 나뭇잎들이 끼워져 있다. 아마 대출해간 누군가가 끼워놓았나 보다. 2006년 7월에 펴냈으니 오래전에 끼어놓은 것은 아니겠다. 아직은 완전히 책장과 하나되지 못하고 약간 물기가 덜 빠진 정도로 마르고 퇴색한 나뭇잎과, 낡고 낡아 허물어져 내리는 아바나의 식민지풍 건물과 쿠바 사람들의 여유로워 보이는 인상이 어울린다. 2006년에 출간되었으나 그 속은 몇 십 년 전의 느린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없음일 것이다. 희망이 없는 게 결국은 절망일지도 모르겠다만. 이 세계에 커다란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아닐까 두고 보았던 것이 1990년대 초반에 무너지고 더 이상 가야 할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그나마 지켜오던 이상은 현실과 일정정도 타협하고 있다. 쿠바의 이중경제는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희망을 유지하기 위한 타협이면서 동시에 실험이 아닐까. 두 가지의 경제체제 가운데 개발과 편리의 이상을 따르는 순간 그나마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빨리 가고 싶지는 않다. 천천히 가더라도 이 지구가 지속가능하다면 그것이 선택해야 할 정치철학이 아닐까. 느리게 가더라도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가져야 할 것들을 지켜가면서 점차 발전하는 게 지구 생물체로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너무 거창했나? 낡은 식민지풍의 건물이 수도를 차지하고, 밥솥 배급 받는 일이 가끔 있는 일이라 해도, 나라에서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고, 극단적인 부의 격차가 없으며, 사람들에게 혁명, 승리, 동지 그리고 인간과 같은 친근하나 생소한 의미의 단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신자유주의로 치닫는 사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나는 그저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말레콘의 콘크리트 방파제 둔덕에 누워 태평스럽게 잠에 빠진 사람들 틈에 끼여 오수나 즐겼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 시간에 둔덕에 누워 낮잠을 즐긴다면 뭐가 이상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