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데 이제사 읽어봤다니.
크리스마스캐럴을 쓴 그 찰스 디킨스라는데 크리스마스캐럴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프랑스 혁명이 배경이고,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인간은 얼마나 미약하고 또 강한 존재인지...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찰스 다네이, 마네뜨 박사, 루시 마네뜨, 시드니 카턴, 로리씨, 드파르주씨, 드파르주 부인,
프로스 부인, 또 로리씨의 심부름꾼, 그리고 시민들 영국의 변호사 등 많은 등장인물들이 시대 안에서 살아가면서 인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오랫만에 이런 소설을 읽어본 거 같다.
분량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토지나 태백산맥같은 대하소설처럼 역사랑 같이 가는 소설을 읽으면 진짜 옛날 교과서서 외웠던 소설의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있을 법한 이야기,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 등.
부당한 대우를 받던 시민계급의 봉기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과 그 혁명과정 속에서 혁명에 부합하는 대의의 탈을 쓴 복수들이 지금 시대에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과 그 일들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할 때 몇 백년이 지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정말로 안타깝다.
그 변한 것이 없는 것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읽어도 진부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답없는 세상을 마주한 거 같아 슬프다.
이 소설의 결말에 보여준 시드니 카턴의 사랑의 실천 방법이나, 귀족들의 부당함을 굳이 고발할 필요없었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옳은 일을 했던
마네뜨 박사의 과거, 그런 마네뜨 박사를 도와주었던 조력자들, 자신이 귀히 여기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했던 프로스부인까지...결국은 개인이 세상을 구원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전체로 뭉쳐져 있으면 미쳐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은 물결치고, 부나 지위 뒤에 숨어 불의를 행하면서도 부끄러움은 커녕 위치가 주는
권력을 명예로 착각하는 가진 자들의 행태는 찰스디킨스가 바라본 과거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나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마 극 중에서 감동적이었던 주인공들처럼 있을법한 개인들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기를...
연재소설이었다는데 그래서인지 이야기들이 간혹 뜬금없기도 했지만, 그건 아주 쪼금이었던 듯.
p140
슬프게, 슬프게, 해가 떴다. 그 햇살이 비춰주는 못지않게 슬픈 광경은 훌륭한 능력과 훌륭한 감성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돕지 못하며 스스로 행복해지지 못하며, 자신의 병을 감지하고서도 그 병이 자기를 먹어치우도록 포기하고 내버려두는
사내였다.
; 시드니카턴에 대한 설명.
굳이 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겠지.
p270
"오는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건 오는 중이고, 오고 있다는 거야. 내 말은 그건 결코 물러서거나 멈추지 않는다는 거야. 내 말은, 그건
결코 물러서거나 멈추지 않는다는 거야. 내 말은 그건 항상 전진하고 있다는 거야.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아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봐, 우리가 아는 모든 세상 사람드르이 얼굴을 생각해봐, 자끄의 무리들이 매시간 점점 더 확신에 차서 스스로에게 말하는 분노와 불만을
생각해봐. 이런 상태가 오래 갈 수 있을까?..."
; 드파르주 부인의 말
시대적 불의로 인해 개인의 불행을 가지고 있는 시민계급의 우두머리로 그려진다.
가만히 읽고 있으면 계급간의 갈등만으로 혁명이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것이 쌓여서 분노를 만들고 울분을 만들고 복수와 보복을 부르게 되는것이 아닐까.
p565
"나는 바사드, 클라이, 드파르주, 복수, 배심원단, 판사, 옛 억압자들을 파멸시키며 상승한 새로운 억압자들을 파멸시키며 상승한 새로운
억압자들의 무리가, 이 처벌 도구가 그 현재의 효용을 다하기도 전에 바로 이 기구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본다. 나는 아름다운 도시와 멋진
사람들이 이 심연으로부터 솟아나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려는 그들의 투쟁과, 승리와 패배 속에서, 앞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시대의 악과, 그
악을 자연스럽게 낳은 앞선 시대의 악이 점점 스스로 속죄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나는 내가 목숨을 걸고 구한 그들의 삶이 내가 다시는 보지 못할 영국에서 평화롭고 유용하고 융성하며 행복할 것을 본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늙고 등이 굽었지만 회복되어 그의 진찰실에서 모든 사람에게 진실하며, 평화롭게 지낸는 것을 본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친구였던 그
훌륭한 노인이 십년 후에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물려주어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조용히 자신만의 보상을 받으러 소멸하는 것을 본다.
나는 내가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그들 자손의 마음속에, 앞으로 올 세대의 마음 속에 신성하게 남게 될 것을 본다. 나는 나이를 먹은
그녀가 오늘을 기념하여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을 본다. 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그들이 생을 다하고 마지막 무덤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는 서로가 상대방의 영혼에 영광스럽고 성스럽게 간직된 것보다 내가 그 두사람의 영혼에 더 영광스럽고 성스럽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누워 있던 내 이름을 딴 그 아이가 한때는 나의 길이던 그 경로를 따라 출세하는 것을 본다. 나는 그가 그 일을 아주
잘해나가서 나의 이름이 그의 이름 덕분에 유명해지는 것을 본다. 나는 내가 그 길에 남겨놓은 오점들이 이미 사라라지는 것을 본다. 나는 정의로운
판사요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인 그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이마와 금발을 가진,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를 이곳으로 -그때쯤엔 오늘날의
흉측한 모습은 흔적도 없이 멋진 곳이 되어 있으 텐데- 데리고 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 아이에게 부드럽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듣는다.
내가 하는 일은 이제까지 내가 한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취하러 가는 휴식은 내가 이제까지 알던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좋은 휴식이다."
; 시드니카턴이 찰스다네이 대신 죽으러 가면서 하는 말.
이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제일 좋은 부분이다.
세상에 좋은 기운을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