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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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건국 60주년 이라니…. 그것도 대통령이 앞장서 국가적으로 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사까지 대대적으로 떠들어대고 있음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1948년 8월 15일 이전 우리의 오랜 역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란 말인가?! 그들이 건국과 개국의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텐데, 그렇다면 그들은 스스로 우리의 오랜 역사적 전통들을 부정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 것인가?! TV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이라는 글귀를 보면서 아마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야금야금 우리 일상 속으로 이런 생각들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건국 몇 주년이라고 떠드는 것이 뭐가 그리 큰 문제냐고 한다면 이렇게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구, 김좌진, 윤봉길, 이회영 등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사실은 독립운동가가 아닌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며, 국가가 1948년 이전에는 없었으니 일본이 1905년에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편입했으니 자기네 땅이 당연하다고 우겨도 할 말이 없어진다면?! 이런 역사인식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일제 식민사학계가 지난 백여 년간 모든 것을 동원해 사수해온 ‘부동의 정설’을 파헤치고,

그 역사적 뿌리와 맥락, 현실과 구조를 명징하게 드러내고 논증하기 위해 쓴 식민사학 추적 보고서다.

-저자서문 中에서….

 

 아직도 여전히 우리는 식민사관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다, 고 말한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면서 웃어넘기겠는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실이기에 그저 속이 쓰릴 뿐이다. 우리가 배워왔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역사는 여전히 식민사관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일제시대 한국사를 날조한 이들이 오늘날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결과물이라며 말이다. 그들의 역사 인식을 ‘정설’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식민사학계가 지난 백여 년간 모든 것을 동원해 사수해왔던 것이며, 더 놀라운 점은 오늘날 국사편찬위원회나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그것을 옹호하며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이 단지 역사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있다는 것이다. 이 책,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이런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그러고는 식민사관을 보다 철저하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바탕으로 말이다.

 

1. 무엇이 식민사관인가?

2. 식민사관의 핵심 프레임은 무엇인가?

3. 누가, 왜, 어떻게 식민사관을 만들었는가?

4. 누가, 왜, 어떻게 식민사관을 재생산하는가?

5. 식민사관의 폐해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6. 어떻게 식민사관을 청산할 것인가?

 

 한국사를 공부할 때, 한사군이 나오는 파트가 있었다. 시험에 대비해야하니까 억지로 외우기는 했지만, 이딴 것을 왜 외우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뜬금없이 튀어나왔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내가 생각하던 역사적 흐름이라는 것에서 어긋나 유독 어색하고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이건 뭐 역시나 이유가 있기는 있었구나 싶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존재했어야 식민사관에서 말하는 정체성론, 타율성론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인 역량을 가지지 못한 채 오로지 외세에 의존해 발전을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고, 이것은 곧 우리 민족을 열등의식에 빠지게 하고, 나아가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시작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한사군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 숨어들어가 있는 것이 식민사관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들은 구석구석 침투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그 실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왜, 누가 이렇게 하는 것일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나라의 사람인데,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로인해 이익을 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입으로는 모두 “식민사관을 청산하자”고 외치지만 식민사관이 견고한 까닭이 있다. 그로부터 이득을 얻고, 자신의 현실과 입지를 정당화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이런 질문을 금기시한다. “왜 그럴까?” 한국사가 태생부터 식민사관이거나 어느 날 갑자기 식민사관이 되었을 리 없는데도 말이다. 분명 누군가 식민사관을 창안하고 재생산해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호도하거나 은폐해서 지속적으로 이득을 누리는 세력은 누구일까?  -P29

 

 앞서 말했듯이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는 식민사관의 철저한 분석을 시도한다. 그 뿌리가 되는 이병도를 시작으로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결과물을 그대로 따라가는 오늘날 주류로 불리는 이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제대로 된 사료 없이 색다른 주장으로 접근하는?!-에 반박하고, 오늘날 정설로 불리는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또한 한국 통사의 대명사로 인정받아온 이기백의 《한국사 신론》과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를 비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나 이 부분에서 잘 알지 못했으나, 알고 보니 놀라운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오늘날 역사학계의 주류냐 비주류냐에 따라서 어느 한쪽만을 옳다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것들이 서로 부딪히며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인데 이미 한쪽-기득권을 쥐고 있는…-에서는 그런 통로를 막아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적어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보다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것이 보다 정확한 역사 해석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확신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자신과 다른 생각들은 일단 무시하고 심지어 왜곡하고 은폐하고 보는 오늘날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금 국회에서 친일파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선동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로 민심을 이산시킬 때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는 문제 처리가 안 되고 나라에 손해가 될 뿐이다. -P316

 

 친일파를 정권의 기반으로 삼았던 이승만의 담화문인데,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식의 액션이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고 표면적으로 그 문제가 드러나면 그것이 사회 문제로 발전되는 것이고, 그로인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문제점을 바로 잡아나가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임에도 그저 한쪽으로만 밀어붙이며-아직도 빨갱이, 라는 단어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듯!- 오히려 그런 문제를 제기한 이들을 비난하게 만드는 것이 오늘날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그런 생각에 함께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뭘 알고나 하는 것인지 의아스럽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과거가 중요하냐,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한 것이다.’, ‘친일청산이 오늘날에 뭔 의미냐, 앞으로가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라는 식의 생각이 점점 무섭게 느껴진다. 축구, 야구 등 모든 스포츠의 한일전에는 흥분하면서, 정작 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들을 자꾸만 비틀고 있는 그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다. 역시 우린 정이 넘치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독도를 두고 일본이 헛소리를 하고 있음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위해 애쓰지만, 정작 제대로 역사를 돌아보려는 이들은 많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아닐까?! (사실은 나부터도 그렇지만 말이다.) 독도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와 같은 선상에 있는 또 다른 문제들에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지금에서라도 동북아공정의 빌미(?!)를 우리-라고 말하기도 쪽팔리는!- 역사학계에서 제공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되면 어떨까?! 또한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어떨까?!

 

철학자 에릭 호퍼는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P63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진실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릭 호퍼의 말대로 질문할 충동을 조금씩 가져야 할 것이다. 비록 나 하나가 그 시작일지라도, 질문의 힘을 깨닫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그런 하나 하나가 조금씩 모여서 함께(!)가 될 것이고 결국에는 이런 기막힌 일들을 뒤엎을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저자가 말했듯이- 민중이 주역이 되는 경이로운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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