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의 힘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엘 포데르 델 페로”, 개의 힘(The Power of the Dog). 『개의 힘』은 1997년 멕시코 엘사우살에서 마약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희생자들이 된 한 가족의 처참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열아홉 구의 시체 중에는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되어있으며, 그 모습 하나하나가 끔찍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끔 만든 장본인도 절대 예상하지 못한, 상상이상의 끔찍한 모습들이 눈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개의 힘'은 이렇게 시작부터 그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개의 힘이란 대충 이런 것-성경 시편 22장 20절에 나오는 이 말은, 아마도 인간의 본성에 잠재되어있는 어둠, 악(惡)을 말하는 것이리라-이다, 라고 맛보기를 보여주듯이 한 가족의 몰살을 보여주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다시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는 1975년으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1975년부터 2003년까지의 멕시코 마약 전쟁(Mexico Drug War)을 담은 이야기를 조금씩, 하지만 힘 있게 풀어낸다. 그렇게 시작부터 잔인하고도 생생하게 드러나는 악의 모습은 『개의 힘』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이 책을 읽게 되는 많은 사람들 또한 그 힘에 지배당하게 된다.
마약단속반 ‘아트 켈러’는, 우연한 기회로 만나 친구가 된 ‘아단 바레라’ 의 삼촌이자 시날로아 주지사의 특별 보좌관이던 ‘미겔 앙헬 바레라(티오)’의 도움으로, 「콘도르」라는 이름의 멕시코 마약조직망 파괴 작전을 훌륭히 성공하게 된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트는 그 임무의 성공이 이전보다 훨씬 크고 더 나은(?!) 또 다른 조직을 만드는 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 콘도르 작전의 성공으로 탄탄대로의 출셋길에 오를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런 길을 갈 수는 없었다. 그저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그’의 마약과의 전쟁은, ‘그만’의 마약과의 전쟁으로 그를 끌고 가게 되고, 그 길은 결코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깊은 수렁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멕시코 마약 전쟁은 시작되고, 그 주변에서 이미 자리 잡고 앉아있는-혹은 서서히 자리 잡아 갈- 수많은 핏빛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개의 힘』은 1975년부터 2003년까지라는 오랜 시간을 이야기로 담아내는 만큼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이 등장하게 된다. 단 몇 줄로 이야기의 시작을 대충 정리하기는 했지만, 이보다는 주요 등장인물의 먼저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아트 켈러
국경의 왕. CIA 출신으로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이다. 어린 시절 마약이 자신의 삶 주위에 존재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직접 경험한 그였기에 마약과의 전쟁은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각이 아닌 실천으로 그대로 옮겨지며 그로인해 자신의 가정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 아단 바레라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던 그는 그의 삼촌인 티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고, 우연한 계기로 티오의 자리를 잇게 되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늘의 군주라 불릴 만큼 마약 조직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다. 아트와는 친구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이제는 완전한 적이 되어버린 관계. 끊임없는 범죄로 성장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아트와의 적 관계를 지속(혹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 노라 헤이든
우연히, 고급 매춘 업소 운영자이자 스카우터인 ‘헤일리 색슨’의 눈에 띄게 되어 고급 매춘부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노라. 매춘부로 살아가면서도 그녀만의 고귀함(!?)을 간직 한 채 살아가던 그녀는 어떤 사고를 통해서 후안 신부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 인연은 순수한 존경과 사랑, 우정으로 지속되었으나 신부의 죽음으로 그녀는 또 다른 삶을 길을 걷게 된다.
- 션 칼란
아일랜드 출신으로, 그 역시 정말 우연한 사건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 우연한 사건이란 살인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시작된 그의 살인은 또 다른 살인을 불러오게끔 만들었다. 결국에는 냉정한 킬러라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냉정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한 매춘부를 잊지 못하는, 그래서 그래도 가장 내일을 그려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약 수사관과 마약 조직의 보스, 고급 매춘부, 그리고 킬러라는 네 사람의 위치는 언뜻 보기에는 한 자리에 모일 일이 있을까 싶은 만큼 다른 모습들이지만, 이들 모두를 잇게하는 한 인물, ‘후안 오캄포 파라다 신부’가 있기에 그들은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설키게 된다.
|
주요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연히’,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우연히 시작된 일들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삶을 살게 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달리 표현할 적합한 말을 찾지 못했기에, 그 시작을 ‘우연’이라는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우연 때문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이 우연하게 일어났지만 원래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우연이라는 이름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던 개의 힘을 끌어낸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우연’을 기점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기는 하지만, 『개의 힘』은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물론 악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 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것이 진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아단이 하늘의 군주가 되기까지 변해가는 모습들, 아트가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 구질구질한 삶을 살던 노라가 고급 매춘부가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평범했던 한 청년이 냉정한 킬러가 되어가는 상황들… 비록 개개인의 삶이 보통의 사람들은 겪을 수없는 파란만장한 삶이지만 그럼에도 진짜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개의 힘』은 멕시코 대지진이나 정치인 암살, 중남미 지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진 미국 정부의 음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멕시코 마약조직에 기여한(?!) 점 등의 실제 사건들과 그와 관련된 실제 인물들을 소설 속에 적절히 녹아내고 있다. 사실, 미국과 중남미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기에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쉽게 구별하며 이것저것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명확히 구분되어진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권력과 명예, 부를 가진 자들-혹은 그런 나라?!-의 생각들은 거의 공통적이니까… 뭔가를 가지고 있기에 그 뭔가를 더 지켜야만하고, 때론 그 이상을 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니까. 어떻게 보면 그들마저도 이런 세상의 희생자들일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세상의 어떤 것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개의 힘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 반대이거나… 스스로가 개의 힘에 지배되고, 또는 스스로가 개의 힘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개의 힘』의 놀라움은 더해진다.
수많은 시간들,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이상의 수많은 사건들이 이 작품에 담겨있다. 이전에 ‘돈 윈슬로’의 작품에서 느꼈던 힘-평범하게만 느껴지는 일들을 기대이상의 놀라움으로 풀어내던 그 힘-을 다시 한 번, 아니 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준비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다보니 그 이야기자체에도 상당한 힘들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체를 계속해서 힘 있게 유지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해버린다. 잠시 흐름이 늘어지거나 끊어질 듯 한 순간이 아닐까 싶은 부분에서조차도 놀랍게 또 다른 반전으로 팽팽한 긴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면 항상 마지막부분에서 다음 편에서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이나 흥미를 끌어당길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물론 다음 편이 시작되면 그런 극적인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부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심지어는 힘없이 축~ 늘어지고는 한다. 단순한 자극적 소재로 흥미유발을 하고는 단순하게 사라지는 모습인 것이다. 돈 윈슬로도 비슷한 방법을 쓴다. 마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나 예고편의 그것과 같은 강렬함을 안겨주면서 대부분 장의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드라마와 다른 점이라면 결코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극적 긴장감은 계속해서 주어지면서도 결코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저 아단 바레라가 ‘좋은 녀석’이었다는 사실뿐이다.
아단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 속에 무엇이 잠재되어 있었든…….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
-P55
앞서 ‘개의 힘’을 악(惡)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진짜 개의 힘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 내면에 잠재된 악의 힘!? 혹은 절대악!? 그저 그렇게 단순한 말로 표현 가능 한 것인가!? 인간에게 언제는 절대선이란 것이 있었고, 또 언제는 절대악이라는 것이 있었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그저 착하기만 한 주인공이 있고, 항상 그 주인공을 괴롭히는 상대역인 악인이 등장한다. 그만큼 선명하게 선과 악이 갈릴 수가 없다. 현실이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은 이야기에 몰입되고는 한다. 하지만 역시나 현실로 돌아오면 또 다르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없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사람들은 여태껏 살아오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게 된다.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면, 거대하게 삶의 전반 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힘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개의 힘이란 무엇인가가 아닌, 인간의 저 깊은 곳에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예외 없이 있는 것이라면- 자리 잡고 있는 개의 힘, 그 힘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흐르는 대로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힘이 드러나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 반대다. 그의 힘에 그저 끌려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절대의 경우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쉽사리 끌려가지만은 않아야 하는 것이 개의 힘에 맞서는 인간의 또 다른 힘이 아닐까?!
『개의 힘』은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철저히 개의 힘에 끌려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건의 해결 유무와 상관없이 끝까지 남아있는 개의 힘. 그럼에도 그 속에서 아주 작더라도 어떤 희망을 찾고 싶어진다. 적어도 그래야지만 우리가 삶을 지탱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그저 힘든 하루하루, 또 오늘과 같은 내일만을 보내야하고, 결국에는 그 누구나 지쳐 쓰러질 것이 틀림없기에 더더욱 말이다. 아트는 또다시 스스로가 만들어낸-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개의 힘에 잡혀 힘든 나날들을 보낼지 몰라도, 적어도 칼란과 노라만큼은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이 아트가 될 수도, 칼란이나 노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 결국 그 선택은 역시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라는 기도의 구절 그대로의 마음으로…
사실 이 책을 연거푸 두 번 읽으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나를 사로잡는가를 계속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혹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두 번째 읽을 때는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는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또다시 그저 흠뻑 빠져버렸기에… 분명 뭔가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읽어보면서 찾고 싶은데, 지금까지 한 이런저런 잡담 같은 말들 외에는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이 거대한 작품을 어떻게 몇 줄의 글로 표현할 것이며,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큰 힘을 어떻게 이런 부족한 글 솜씨로써 표현할 수 있을 것이며, 개의 힘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딜레마(!?)를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내가 어떻게 감히 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그래야만 알 수 있다고.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몇 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낸다. 거의 6년이라는 ‘몇 년’의 시간을 준비해서 그런 일을 해낸 ‘누군가’ 중에 한사람이 바로 ‘돈 윈슬로’ 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오랜 시간 뭔가를 준비하고 그 목적을 이뤄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까지 좋으란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 윈슬로는 그 결과까지 아주 만족스럽다. 본인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사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결과물을 손에 쥐고 느낄 수 있는 독자 중 하나인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확신도 든다. 이런 만족감을 느낄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