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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평점 :
쓰리 세컨즈?! 제목이 말하는 이 ‘3초’라는 시간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이 책이 범죄자와 경찰 정보원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 한 남자와 3초라는 시간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싶었다. (뒤늦게 이런저런 이 책의 자료들을 통해서 알았던 바에 의하면, 저격 후 명중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 3초라고 한다. 어쨌든!) 처음에 생겼던 궁금증이 한동안 계속해서 떠올랐기 때문인지 자꾸만 뭔가를 연결시키고만 싶은 생각에 “전 세계를 매혹시키기에 ‘3초’면 충분하다” 는 광고 문구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시작에 있어서만큼은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정확인 언제부터인지도 사실 모르겠다- 어느새 이 책에 빠져든 나를 발견했다. 시간의 개념도 없었다. 소설 속의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길게만 느껴질 며칠을 담은 이야기였겠지만, 나에겐 그 시간이 마치 3초처럼 느껴졌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시간이 흘러간 것이었다. 그랬다. 3초 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끝난 것만 같은 느낌. 허무함이 아닌 정신없는 집중의 시간들.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들기까지 하는 시간들이었다….
‘피에트 호프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잔혹한 범죄자이자, 동시에 ‘파울라’라는 암호명으로 스웨덴 경찰의 비밀정보원 역할까지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가족까지 감쪽같이 속이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폴란드 마피아 조직인 보이테크의 조직원으로, 스웨덴 전 교도소에 형성된 마약 시장의 장악이라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할 중심인물의 자리까지 올라간 상태이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그는 교도소로 들어가야만 한다. 동시에 이는 파울라의 삶에 있어서는 폴란드 마피아 조직의 스웨덴 진출(?!)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가 사랑하는, 그리고 지키고 싶은 가족과 제대로 된 삶을 원하던 그이기에, 그는 파울라가 되어 이 위험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가족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하지만 그 시작부터 힘든 하루 하루의 연속이다. 새로운 삶은 고사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걱정했던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 그를 파울라라는 도구로 사용했던 스웨덴의 권력들이 그를 버리게 되면서 이제 호프만 앞에 놓인 것은 죽음밖에 없게 된다.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3초…
이 소설은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두 사람에 의해 쓰였다. 이미 《비스트》를 통해서 한 번 접해봤던 작가들이기에 그들의 특이한 이력-한 사람은 기자 출신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보다도 그들이 안겨줬던 그들만의 사실적이면서도 그 이상의 생생한 느낌이 지속될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물론, 그 기대는 충분히,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다양한 경험들을 담아내고, 부족한 것들은 또 다른 자료와 연구 등을 통해서 -심지어 교도소 마약밀반입을 실제로 시도해서 성공까지 했단다- 보완하여 보다 현실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은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다. 또한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오락적 요소(?!)들, 이를테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이야기라든지 결코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와 같은 것들까지 충분히 담겨있어 더더욱 생생하게 주인공인 호프만의 삶을 따라가며 즐길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장르를 만나면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싶을 때가 있다. 허구임을 알지만 그래도 사실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어서 그런 것일까. 과연 저런 일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싶은 생각들, 특히나 뭐든지 잘하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물론 『쓰리 세컨즈』의 호프만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은 실제 실험을 직접 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정도라면 이런 것들도 충분히 허용(!?)될 수준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소설을 통해서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스운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소설을 통해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소설이기도 한데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 소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나 이 책, 『쓰리 세컨즈』에서 던지는 질문과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큰 건수(?!)를 하나 잡기위해서 작은 범죄들은 모두 묻어버리는 모습과 그런 큰 목적의 일들을 하기위해 누군가를 정보원-좋게 말해서 정보원이지 흔히 끄나풀이나 앞잡이 정도로 불리는…-으로 이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를 적으로 돌려버리는 모습.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킨다는 따위의 말들이 힘이 발휘하는 순간들. 또한 그 속에 포함되는,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비열하면서도 부끄러운 순간들. 이런 것들이 과연 경우에 따라서 라는 허술한 말로 허용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일까?! 물론 이마저도 힘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행해질 수 있는 일이겠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일이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서 벌어진다면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사건의 심각성이나 그 일에 대한 해결방법은 결국에는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의 대립이라는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만 이어지지 않을까?! 이미 정답은 나와 있는데, 그 정답과 현실과의 거리가 상당할 것이다. 소설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이런 거리들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방향의 길을 찾아보는 것, 아니 한 번 쯤 생각만이라도 해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없을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 쉬운데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 『쓰리 세컨즈』를 그저 책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만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재미가 있기에 또 다른 메시지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출간 즉시 할리우드 영화화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소설로 충분히 즐거움을 맛봤으니 이제는 느긋하게 영화로 만나는 『쓰리 세컨즈』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일도 즐겁게만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