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 백성의 편에서 세상을 바꾼 휴머니스트
임채영 지음 / 북스토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국사를 공부하다보면 조선 말 즈음에는 항상 실학이 등장했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실학은 경세치용학파와 이용후생학파로 구분되는데, 경세치용학파에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이 있고, 이용후생학파에는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이 있다. 유형원은 업적은 무엇무엇이고, 이익의 업적은 또 무엇무엇이다….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간단한 도표를 그려가면서 ‘이름 - 업적’이라는 형식의 단 한 줄로 수많은 것들을 정리해버리곤 했다. 그 중에서 박지원 역시도 ‘박지원 - 수레, 선박의 이용 강조, 화폐 사용, 양반전 편찬’이라는 단 한 줄로 정리되었고, 암기되었다. 단 한 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언젠가는 꼭 한 번 연암의 글을 제대로 읽어야겠다, 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최근까지도 여전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생각에서 행동의 단계로 몇 번이나 넘어가고자 했지만, 그 시작조차도 막막했던 것이 사실이다. 검색을 하면 나오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나를 막막함을 넘어 혼란으로 이끌기까지 했다. 막막함이나 혼란이라는 핑계를 대며 지금까지 미뤄왔던 것은, 어쩌면 그 시작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고전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고 찾아든 쓸데없는 부담감이란 놈이 나를 자꾸만 ‘언젠가는’이라는 그늘 밑으로 숨게 한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연암 박지원』이라는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음… 그렇다. 『연암 박지원』은 소설이다. 다가서기 부담스러웠던 고전들이 아닌, 소설!! 누군가는, 연암은 그가 써내려갔던 글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소설로 뭘 어쩌겠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이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말일 수도 있다. 연암이 직접 쓴 글들을 통해서 실학자나 문장가로서의 그를 제대로 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들에서 벗어나 -작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연암의 인간적인 면을 알아가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나처럼 다가가기 힘들었던 연암이라는 인물에 보다 쉽게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는 결국,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그 시작점을 찾은 것이기도 하고….

 

 『연암 박지원』은 연암이 안의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보낸 5년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실학자나 문장가로서의 연암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의 연암을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앎을 바탕으로, 다분히 개인화된 지식 속에만 빠져 현실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그 당시 집권층의 모습이 아니라,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며 또 함께 개선해나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우리가 책 속의 글자로만 보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어떻게 실제로 펼쳐나가는가를 그림 보듯이 볼 수 있게끔 한다고 하면 과장일까?!

 

 기본적인 원칙들이 훼손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킬 것은 지키며, 또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리는 연암의 모습은 그 배경이 조선 시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랍기만 하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상하 수직적 구조의 신분제를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행동했다는 사실이나, 신분적 차별에 대해 품었던 반감 등을 볼 때면 그 놀라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단순히 정해진 원칙만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행동한 점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서 결국에는 사람, 그 자체를 향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향한 사랑이 그가 다스리던 고을을 변하게 만들고, 또 앞으로의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길게, 넓게 보도록 하세.

혹시 아는가, 이백 년쯤 후에는

우리들이 그리던 세상이 와 있을지도 모르지.” -P275

 

 자신의 이상을 현실과 조화시켜 나가는 모습. 그러면서도 거기서 더 나아가 그가 그리던 세상을 꿈꾸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제 곧 총선이 있고, 또 대선도 다가오지만 그로인해 뭔가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마저도 없어지는 오늘날 우리의 세상을…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누가 더 잘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덜 해먹을 것인가를 생각해서 투표해야 한다, 는 말에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오늘날 우리의 세상을… 어쩌면 그마저도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세상은 또 아닌지… 흠… 지금 우리에게는 연암과 같은 목민관이 있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을 굳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또 생겨나면서 그만큼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것들이 바뀌면서 동시에 바뀌지 않아야 할 것들도 바뀌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역시 모든 사람이 그 주인공이고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렸던 연암 박지원의 꿈은 과연 언제쯤이나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까?!

 

 

 

 연암이 그리던 꿈이 뭐냐고?!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지 않을까?! 좀 더 알아가길 원한다면-그것도 부담 없이- 『연암 박지원』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간 박지원의 따뜻한 모습을, 그리고 그 세상을 직접 확인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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