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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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애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기소된 한 여인이 있다. 검찰 측은 그녀의 전 애인이자 작가이기도한 ‘필립 보이스’가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정황들이 이 여인을 범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정황들이라는 것을 살펴보자면, ‘해리엇 베인’이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소설가이며 특히나 추리, 탐정 소설을 쓴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녀가 살인 및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기발한 방법들을 여럿 다룬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녀는 독살을 다룬 소설을 쓰기위해-물론 그녀의 주장이다- 여러 약국에서 다른 이름으로 비소를 비롯한 다른 독극물들을 구입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그녀는 진짜 필립 보이스를 죽게 만든 범인일까?!

 

 이런 그녀의 곁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한다. 증거가 확실하고 모든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고, 해리엇 베인은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그의 이름은 ‘피터 윔지’! (그렇다 이제서야 이 소설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다.) 이 주인공은 해리엇 베인에 대한 사랑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맹독』이라는 제목이 필립 보이스를 죽게 만든 강력한 독인 비소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독-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피터 윔지의 등장으로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맹독』은 시공사에서 출간된 ‘귀족 탐정 피터 윔지’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도로시 L. 세이어즈’가 쓴 피터 윔지 시리즈로는 다섯 번째가 되는 것이고…)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접하는 윔지 경의 이야기이지만, 뭐 어쨌든… 가장 먼저 당연히 주인공인 피터 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수사를 하게 되는 이유-첫눈에 반한 사랑 때문에?!-에서부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와 피터 윔지라는 캐릭터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면서 한편으로는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인물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봤다. 무슨 대단한 영웅(뭐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선입견이라는, 혹은 너무 뻔 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주인공일지라도 인간적인 면이 다분한-어느 만화의 주인공 같이 무조건 초사이언일 필요는 없으니…- 그런 인물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주인공이 피터 윔지이고, 『맹독』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도 당연히 피터 윔지이지만, 이 캐릭터만큼 관심을 끌게 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맹독』의 작가인 ‘도로시 L. 세이어즈’이다. (물론 이 소설 이전까지는 그녀의 존재도 몰랐음을 미리 밝혀둔다.) 옥스퍼드 대학 학위를 취득한 첫 여성이자 신학자, 저술가였던 도로시 L. 세이어즈가 1930년에 발표한 미스터리 소설이 바로 이 『맹독』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가 쓴 이 『맹독』에 내가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엄격한 철학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추리클럽(The Detection Club)의 일원이었다고 하는데, 이 클럽의 엄격한 규칙들이 곧 그녀의 작법과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규칙이란 것은 ‘작가는 독자와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독자들이 범인을 추리할 수 있도록 중요한 단서를 숨기지 말아야 하며, 우연이나 미신이 아닌 논리에 의해 추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추리 소설들을 접하면서 내가 아쉬워했던 사항들을 도로시 L. 세이어즈는 이미 철학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글로써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내가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 속의 피터 윔지, 소설을 써내려가는 도로시 L. 세이어즈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꼭 이야기 하고 싶은 인물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소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약을 펼치는 여성들-그들도 나름 탐정이라고 불러야 할까?!-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잉여’로 분류되는 여성이 그런 사회를 정면으로 반박하게 만드는 모습들은 그저 단순한 즐거움 따위로 넘겨버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로 보다 한걸음 발전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소설을 단순히 조금 매혹인 탐정 소설로만 언급하기에는 뭔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해리엇 베인의 등장과 피터 윔지 경과의 첫 만남’이라는 ‘귀족 탐정 피터 윔지’ 시리즈의 나름 역사적인 순간을 다룬 소설 『맹독』이지만, 이전까지 피터 윔지를 알지 못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리 매력적인 사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 소설이 아니니까 상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 다른 피터 윔지 시리즈를 접하고 돌이켜 보았을 때 더 기억에 남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맹독』이 시리즈의 시작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쌓여갔던 수많은 궁금증이 나를 그 시작이전의 시간으로 돌려가게끔 만든다. 《시체는 누구?》, 《증인이 너무 많다》가 존재했던 그 시간으로 말이다. 이제 《시체는 누구?》, 《증인이 너무 많다》로 슬며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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