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어릴 적 TV를 통해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하물며 평생을 살며 우리나라의 좋은 곳을 돌아다니려 해도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을 텐데- 왜 자꾸 사람들은 외국으로 떠나려고만 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대학생 때 남들은 다 떠난다는-혹은 적어도 한번쯤은 생각해본다는- 외국 배낭여행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조차 해보지 않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들을 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왜 좀 더 큰 세상을-그것도 조금이라도 더 어린나이에- 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는지… 『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서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자신을 얽어맨 굴레를 벗어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그러면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말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린 시절에 이런 얘길 해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인도방랑』은 ‘후지와라 신야’가 스물넷의 나이에 대학을 뛰쳐나와 세계 방랑길에 오른 최초의 여행 기록이라고 한다. 그 여행지는 당연하게도 인도이고 말이다. 젊은 날 그가 만난 인도라는 낯선 세상과 그 속에 들어있는 낯선 자신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에게 닥쳐올 날들을 향한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는 발걸음들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희미한 듯 하지만 그 어떤 다른 것들보다 선명함을 각인시켜주는 사진들과 함께…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 책은 인도 여행에 대한 안내 책자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이 스물넷의 나이에 떠난 신야의 여행 기록이기는 하지만, 그가 1944년생이니까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인지… 실제 이 책도 일본에서는 1972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고 한다. 단 1년 만이라고 해도 뭔가가 정신없이 바뀌는 요즘을 생각할 때, 이미 이 책을 통해 당장의 실용적인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벌써 몇 십 년도 더 지난 이 여행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나 티베트를 다녀와서 신비를 팔아먹는 것은 일종의 사기입니다.
명상이란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신이란 말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형식은 믿지 않습니다. 말없이 좌선을 하는 게 명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명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P48

  

 인도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까!? 커리, 갠지스, 요가, 명상, 신비!? 뭐 그런 류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단편적이거나 막연한 느낌보다는 보다 세부적인 사항들, 혹은 반대로 인도라는 나라 전체를 그려낼 수 있는 보다 큰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인도와 관련된 다양한 에세이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요즘을 생각해본다면 좀 더 명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다양함들이 오히려 식상함으로 비춰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신비나 애매모호한 감정들을 앞세워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너나할 것 없이 흡사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현실에 가깝다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서 인도라는 곳이 아름답게 포장되었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이다. 덕분에 이미 포장되어진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진짜 인도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들 속에 놓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기 입으로(글이라고 해야 하나?!) 신비를 팔아먹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말하는 신야의 글은 당연한 것임에도 그 당연함을 넘어서는 것 같아 보인다. 

 

 겉에서만 바라보면 어느 사람이든, 어느 장소이든 신비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고, 자신이 살아온 곳과 다르니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그런 신비라는 느낌도 결국에는 그 누군가에게는 현실일 뿐이다. 인도 역시도 신비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아니 또 다른 일상인 것이다. 신야는 그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것은 곧 -요즘 TV쇼에서나 갖다 붙이는 어설픈 리얼리티가 아닌 진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그를 통해서,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은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 최소의 것만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깊숙한 산이라든가 언제 위험에 처하게 될지도 모를 사막이라든가 하는 낯선 땅위에 서있는 나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다녀온 인도이지만, 내가 가기도 훨씬 전 신야가 갔었던 인도를 통해 그가 지닌 과거의 기억, 내가 지닌 과거의 기억들까지 떠올릴 수 있는 시간들도 되는 것이다. 나는 떠올리지 못한 생각들을 지금에서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삶의 다양한 성찰들을 뒤늦게나마 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여행의 풍성함을 더해주면서 말이다. 

 

 앞서 ‘이 책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물었던가. 그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도방랑』은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가야할 세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결국에는 사람들을 어디론가를 향해서 나가도록 등을 떠미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이 젊은이들의 등을 떠미는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는 후지와라 신야의 소망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야가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와 비교해도,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젊은이와도 조금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삼십대의 나이에 있는 나에게, 지금에 와서 다시 나를 등떠미는 이 책을, 이제야 만났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할지, 그래도 이제서라도 만날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뜨거운 감정들이 솟아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여행에 대한 동경이 아닌, 내 삶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느낌의 책으로 다가올까?! 부디 꼭! 직접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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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일상 2011-10-0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아나르코 2011-10-12 01:34   좋아요 0 | URL
책과의일상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