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어느 날, 경찰이 뜬금없이 당신을 찾아와서 당신이 유괴 및 폭행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니, 어떤 기분일까라는 궁금증을 떠나서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 그렇게 말이 되지 않는 질문은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까 말이다.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선정적인 사건 중 하나로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18세의 엘리자베스 캐닝이 집으로 오던 중 사라지게 되고, 4주가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몸은 상처로 가득했고, 행색도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4주 동안 감금당했다가,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감금한 여자와 그 집을 지목했다. 지목을 당한 사람은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며 항변했지만, 결국 유죄로 선고받았다고 한다. 유죄는 선고받았지만 진짜 사건은 어땠을까?! 진짜 그녀는 유괴를 당했던 것일까, 아니면 뭔가를 감추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까?! 법정에서 선고는 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미해결로 남겨져있는 이 사건을 ‘조세핀 테이’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했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베티 케인이라는 한 여자아이가 고모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로 납치를 당하고, 어느 집에서 감금된 채 구타를 당하면서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 운 좋게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안정을 찾은 후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경찰이 조사를 해보니 그녀가 갇혀있었던 집은 바로 ‘프랜차이즈 저택’이라고 한다. 그녀 덕분에(?!) 프랜차이즈 저택에 사는 두 모녀가 갑작스럽게 유괴 및 폭행의 용의자가 된다. 당연히(?!) 그녀들은 이 여자아이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일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앞서 언급한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과 거의 비슷하게, 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이 소설이 쓰이기 200년 전의 사건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조세핀 테이’는 이 황당한 사건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이 사건이 사실은 한 여자아이의 거짓 진술일 뿐인 것일까, 아니면 그녀는 진짜 프랜차이즈 저택에 갇혀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사건을 담당하게 된, 두 여자, 그러니까 프랜차이즈 저택의 샤프 모녀의 변호를 맡게 된 블레어·헤이워드·베넷 법률회사의 로버트 블레어가 주인공이다. 그는 이 황당한 사건을 통해 변함없는 일상에서 탈피해 새로운 감정과 열정을 내보이게 된다. 매리언에 대한 사랑의 감정까지 더해졌음에도-혹은 그랬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어떤 확신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친척에게 질투의 감정까지 살짝 내보이는 나름 귀여운 캐릭터이기도하다. 작가는 이런 캐릭터를 통해 보통의 이야기이상으로 많은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 같다. 귀엽게, 그리고 유쾌하게-뭐, 사건과는 상관없이-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면서도 그 속에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언론의 무분별한 태도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블레어 외에도 그의 친구 케빈이나 샤프 모녀, 그리고 스탠리 등의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꽤 괜찮을 듯하다.
사람의 일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고, 그에 따라 행동도 하려고 노력해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그런 당연함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요즘이니…- 따라서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으로, 혹은 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의 이야기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것에 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랬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아직은 나의 생각-혹은 기대!?-에 나 스스로가 못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블레어가 소녀의 이야기가 전부 거짓이라는 생각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있을 때, 나 역시도 처음의 생각-혹시 그녀가 진짜 프랜차이즈 저택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과 달리 무작정 그를 따라가고만 있었으니까 말이다. 실제 결론이 어떻든 상관없이 -그리고 그 결론이라는 것마저 작가가 생각하고 글로 풀어낸 것에 불과하니까- 평소 내가 싫어하던 모습으로 다가가는 나를 마주했으니…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나의 경우처럼 무작정 따라가지만 말고, 이런저런 의심 품고 끝까지 나간다면 보다 긴장된 순간들로 인해서 이 작품을 더 즐겁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깜짝 놀랄 만큼의 큰 반전이나 독자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의 정신없이 빠른 전개는 없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 뻔 한 내용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 뻔 한 쪽으로 독자를 몰고 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계속해서 이런저런 의심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시간이 아닐까?! 그리고 책을 읽는 순간에만 그런 시간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에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을 것이고… 계속해서 스스로가 생각을 하게끔하고, 그런 생각들의 쌓이고 쌓임이 다시 소설로 옮겨가 잠시라도 집중력이 흐려지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진 소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