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전 1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공성전(攻城戰) - 성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기대는 적을 공격하는 것”
 


 내가 공성전이라는 단어를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적어도 그것이 어떤 게임을 통해서라는 사실은 기억난다. 그 당시 나에게 공성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종의 최후의 발악이랄까?!-으로 그저 지루한 시간 끌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에는 게임이니까, 언젠가는 끝날 거라는 생각으로 그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아주 단편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공격을 받고 있는 성안에서의 모습들을 그려보는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좀 더 흥미진진한 시간들이 되지 않았을까?! 비록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리멸렬한 전쟁 속에서 그저 살. 아. 가. 고 있는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공성전』도 내가 하던 그런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실제로 작가가 검은 카디스 만과 하얀 도시 카디스의 색채 대비를 통해서 흑백의 체스 판을 떠올리며 글을 통해 일종의 게임을 하도록 했으니 틀리진 않았으리라…  

 

 

 소설 『공성전』을 이야기 전에 우선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의 경우, 아무런 역사적 지식이나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펼쳐 들었고,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다가오는 막막함-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단단한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랄까-에 조금 당황스러웠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낯선 나라의 지명과 어렵기만 한 이름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까지 더해져 나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다. 조금만 알았으면 훨씬 금방 익숙해 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공성전』은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1세의 침략으로 유럽 전역이 전장으로 변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젊은 국왕이 볼모로 잡혀가는 등의 치욕을 겪는 스페인에 남아있는 독립된 영토는 작은 항구도시 ‘카디스’뿐이었다. 프랑스는 이 카디스 함락을 위해 공성전을 펼치게 되고, 이 카디스에서의 전쟁 속 사람들의 삶이 바로 『공성전』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공성전』에서는 줄기가 되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잇고 있는 사이사이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자, 중심이 되기도 하는 것이 카디스를 향한 프랑스의 공성전. 그 임무를 위해, 카디스 내부의 깊숙한 곳까지 공격이 가능한 대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데포소 대위가 있다. 그리고 그의 목적에 도움을 주는-프랑스가 공격한 포탄의 위치를 표시하여 그들에게 알려주는, 스페인 입장에서는 첩자라고 불리는…- 행동을 하는 박제사 푸마갈이 있다. 이렇게 프랑스가 카디스의 함락을 위해서 노력하고, 서로간의 전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와중에 카디스 내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것도 연속해서… 이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카디스의 강력계 형사인 티손 반장이 있다. 그리고 그와 체스 게임의 상대자이자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바룰 교수가 있다. 반면에 이런 전쟁이나 연쇄살인과는 무관한 듯 또 다른 이야기의 흐름 속에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팔마가의 사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롤리타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필요에 의해 무장선의 선장을 하게 된 페페 로보 선장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더해져 『공성전』의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해준다. 

 

 

 『공성전』은 이런 이런 작품이다, 라고 명확하게 단정 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쟁과 역사를 다루고 있고, 그 속에 살인사건도 들어가 있고, 거친 모습의 사람들과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어떤 특정한 장르만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뒤섞여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로따로 일어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전혀 무관한 듯 느껴지지만 절대 따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전혀 다른 것이지만 서로 맞물려 제대로 돌아가고만 있는…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을 처음 읽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상당히 힘이 들었다. 하지만 보다 크게 이 책을 읽고 상상해나간다면,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세세한 부분들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뭐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그저 막연히 느낄 수 있는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만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준비기간만 수년이고, 집필에도 2년이나 소요되었다는 이 작품을, 작가 스스로도 ‘공성전은 나의 20여 년 작가 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빛나는 전리품이다.’라고 말했다면 이미 말을 다한 것이리라.  



전쟁 중이기는 했지만, 카디스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P263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잊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카디스’라는 공간에 대한 보다 많은 생각이 아닐까싶다. 카디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원래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부터 전쟁이라는 불안감에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까지. 그들은 일반인에서부터 성직자나 정치인들까지 다양한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혹은 현실주의자, 급진주의자라며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아주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카디스라는 공간에서,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행해지는 프랑스의 공격도 있다. 자유라는 이름의 다양한 욕망과 타의에 의한 다양한 종류의 억압이 묘하게 공존하는 공간. 그 공간 속에서 전쟁이라는 요소로 인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나와 당신의 모습들… 진짜 전쟁과 삶이라는 전쟁. 그 어느 것이 진짜 전쟁인 것인지, 혹은 그 둘 모두가 진짜 전쟁인 것인지… 뭐,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이 카디스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보다도 책을 읽고 난 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경우의 책들이 있다. 나만의 그런 책들 사이에 또 하나의 작품, 『공성전』이 추가됨을 느낀다.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지만, 그 후에 다가오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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