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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더 리퍼 ㅣ 밀리언셀러 클럽 115
조시 베이젤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이제 당신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스터 섬에 있는 부두노동자 석상처럼 생긴 남자. 파란 수술복 위에 오버코트를 입고 바람이 통하는 클로그 슬리퍼를 신고 있는 남자. 그렇다. 그는 의사다. 하지만 그를 그저 그런 의사나, 평범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게 될 것이다. 출근길 그의 뒷덜미에 총구를 들이미는 녀석을 의식을 잃은 채 길바닥에 쓰러지도록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그저 잠깐의 짜증으로 여기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어떤가, 도대체 그는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심상치 않은 것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 의사의 이름은 ‘피터 브라운’이다. 그리고 그는 킬러-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피에트로 브라우나’이기도 하다. 과거 마피아의 킬러로 살아온 ‘피에트로 브라우나’는 손을 씻고 ‘피터 브라운’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의사로써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나름의 평온한 -물론 의사라는 직업 자체의 힘든 점은 분명 있다- 삶을 살아가던 그의 앞에 큰 장애물이 나타난다. 과거에 알고 있던 마피아를 환자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이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다 깊은 그의 이야기, 킬러 였던 어느 의사의 고백을 듣게 된다. 킬러라는 길을 향해서 걸어오고, 걸어갔던 그의 과거 이야기는 점점 속도를 높여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속도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 속에 갇혀버린다. 반면 새로운 삶이 된 현재의 의사 생활을 -의사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현실감 있게 묵직하게 끌고 간다. 그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마침내 어느 한 시점에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말이다.
마모셋 교수에 따르면,
뭔가를 놓아둔 장소를 굳이 기억해 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지금 어딘가에 그걸 두어야하는데,
그렇다면 어디다 둘까 선택하고 그곳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
사람들의 성격이란 생각보다는 고정적이다.
우리가 날마다 다른 사람으로 깨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그저 우리는 우리를 믿지 못할 뿐이다. -P332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으로 이런 책이 나올지 예상 못했다. (이런 책이라는 말에는 지금까지의 시리즈와는 다른 상큼한 표지도 한 몫을 한다.) 가만히 보니 그것은 어떤 묵직함과 정신없을 정도의 속도감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있는 유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진지하고, 숨 막힐 정도의 위험한 순간에서도 잃지 않는 웃음. 단순히 웃음이라는 의미로 나타내기보다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 블랙 코미디!! 『비트 더 리퍼』는 단순한 웃음이 아닌, 인간 및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하게끔 따끔하게, 하지만 웃으면서 말해주는 것이다.
『비트 더 리퍼』의 작가 ‘조시 베이젤’은 창작 학사 학위와 의사 자격증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지금은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한쪽에 집중하기에도 벅찬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창작과 의사라는 조합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멋진 하나의 작품을 창작했다. 의사라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학용어들을 담으면서도 딱딱하지만은 않게 풀어내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현재형 시제를 끝까지 힘 있게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점점 빠르고, 박진감 있게 발전시켜나가는 그의 힘은 예상보다 놀라웠다. 하긴 뭐,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소설이기도 하면서, 영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이라고 한다!-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건가?! 그런 ‘조시 베이젤’이 지금은 『비트 더 리퍼』의 속편까지 쓰고 있다니… 이번에는 또 어떤 놀라움을 전해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쨌거나 그것은 한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영혼이 없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양심을 아웃소싱 하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P218
뜬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아웃소싱이 꼭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의 생각-그것이 양심이든 단순한 마음이든…-에도 얼마든지 아웃소싱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생각이 부족한 것인지, 그리고 그 부족한 생각을 누구에게 아웃소싱 해야 하는 것인지 한번쯤은 고민해 봐도 좋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까이에 있는 자기계발 서적이나 인문/교양 등의 서적을 통해서 나를 키워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런 소설-그냥 한 번 읽고, 생각 없이 넘겨버리기에는 아쉬운-, 『비트 더 리퍼』같은 소설을 통해서 나 자신을 키워가는 것은 어떨까?! 도대체 뭘 배워야 할 지 모르겠다고?! 음… 적어도 책을 읽기 전부터, 생각도 아웃소싱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배운…것…아닌…가…?!;;;; 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