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자 1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무덤들로 만들어진 하나의 원이 발견된다. 그 무덤들은 각각 50센티미터의 길이에 20센티미터의 간격으로 만들어져 있고, 안으로 50센티미터 깊이에 뭔가가 파묻힌 상태이다. 구멍 하나에 하나씩 파묻혀 있는 그 뭔가는, 어린 아이의 왼쪽 팔이다. 얼마 전 실종된 데비, 에닉, 세이바인, 멀리사, 캐럴라인 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여자 아이들의 왼. 쪽. 팔. 인 것이다. 아이들의 왼쪽 팔이 발견되기 얼마 전,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세 번째로 사라진 세이바인 같은 경우, 다른 아이들과 회전목마에 앉아 두 번째 바퀴까지 부모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세 번째 바퀴째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다섯 번째 아이 캐럴라인은 방 침대에서 자다가 사라져버렸다. 바로 옆방에 그녀의 부모가 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단순히 납치라고 생각되던 사건들이 다섯 개의 팔이 발견됨과 동시에 연쇄살인 사건이라 확정 짓게 되고, 사건에는 로시 경감, 스턴, 세라 로사, 클라우스 보리스로 이루어진 연방경찰의 행동과학 수사팀과 게블러 박사가 민간 자문위원으로 투입된다. 그리고 그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여섯 번째의 팔이 발견되고, 그 여섯 번째 아이의 신원을 찾기 위해 실종 사건 전문가인 밀라 까지 투입된다. 그렇게 그들은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한, 아니 연쇄살인범이 내미는 문제를 풀기위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문제만 들이미는 살인마에게 수사팀은 -범인을 비인격화시키지 않고 실체를 파악하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앨버트’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그런 그들에게 첫 번째 실종되었던 아이의 시체가 어느 자동차의 트렁크에서 발견된다. 많은 이들이 그 차를 운전하던 남자를 앨버트로 생각하지만, 그 남자에게는 처음으로 발견된 -이미 시체가 된- 아이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고 이어서 발견되는 또 다른 시체. 그리고 다시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는 그 장소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들의 진상들… 앨버트는 시체를 하나씩 하나씩 수사팀에게 들이밀면서, 뭔가를 계속 이야기한다. 단,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직접 찾으라는 식으로 말이다. 앨버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도대체 앨버트는 누구인지, 그리고 아직 신원조차 확인 되지 않은 여섯 번째 아이는 누구인지 이런저런 혼란만이 쌓여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속도를 붙여간다.

 

 하나씩 하나씩 발견되는 어린 아이의 시체, 그리고 그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장소와 얽힌 또 다른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더해지면서 수사팀과 동시에 독자들을 궁금증과 놀라움, 그리고 커다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가 그저 복잡하고 지루하다면 -1, 2권 합쳐서-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두께가 결코 만만치 않게 보였겠지만, 오히려 그것도 부족하다는 듯이 단숨에 읽어내도록 만드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또한 보통의 이런 이야기들은 음악의 운율처럼 강약을 반복하고는 한다. 특히 장편 소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다. 점점 더 압박만 가해올 뿐이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말이다. 눈을 떼는 순간, 이 게임에서 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 순간순간, 케블러 박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수사팀의 ‘프로파일링’을 기본으로 하는 수사의 방향을 보면서,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가 겹쳐져서 떠오르기도 한다. 이미 미드로 익숙해진 프로파일링이기에 낯선 느낌 없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보다 즐겁게 읽어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칫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사 과정을 비롯한 작은 것들 하나하나까지 세밀한 묘사와 전문성이 느껴지는 설명들에, 수사팀뿐만이 아니라 책 밖에 있는 나까지도 전혀 배제하지 않는 솔직함까지 더해져서 모두가 함께 범인을 쫓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을 전해주니까 말이다. 마치 독자인 나까지도 직접 수사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범죄학자였다는 작가의 이력이 그대로 장점으로 되어 나타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밖에도 『속삭이는 자』가 전해주는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 되었다는 것이다. (혹시나 있을 피해를 방지하고자, 작가는 의도적으로 국적이나 장소를 모호하게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범죄학과 행동과학 전문가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 진행과정의 생생함을 보다 부각시킨다는 점이 장점이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그가 전해주는 생생함이 -4개의 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유럽 각국의 종합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할 만큼의 흥행성에다가 작품성까지 겸비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도나토 카리시’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속삭이는 자』에서 우리가 쫓는 앨버트는 연쇄살인범이다. 설명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그 유형에 따라 ‘망상가’, ‘선교자’, ‘권력 추구형’, ‘쾌락 추구형’, 그리고 ‘잠재의식 속의 연쇄살인범’이 있다고 한다. 앨버트는 그 중에서도 ‘잠재의식 속의 연쇄살인범’으로 분류된다.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을 교묘히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게끔 유도하는 살인범. 이것은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잠재의식 속의 연쇄살인범’을 심리학자들은 『속삭이는 자(Il Suggeritore, The Whisperer)』 부른다고 한다. 실제 사건과 실제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둠속에서 누군가를 조종하지만 처벌은 받지 않는 자들.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사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만들고, 또다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버리는 자들. 그리고 그들이 지닌 위험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혹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소설 속, 혹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누구라도 그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내가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꼭 연쇄살인범은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 종말론을 부추긴 자들을 비롯해, 지금도 누군가의 가정을 파탄 내며 재물만을 바치기를 기다리는 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밀라는 이라는 것은 언제든 혼동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가 서로의 도구로 사용되고 언제든 처지가 뒤바뀔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연쇄살인범이나 속삭이는 자 만큼이나 우리가 주목해서 볼 사항은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이다.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다는 악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들을 보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믿고 있던 주인공-혹은 한없이 착할 것만 같은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의 악의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누구나 품고 있는 악의지만, 인간이라는 그 이름 자체로 조절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그 인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는 모습들. 그것이 내가 믿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서 깨지는 모습은 결코 마주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속삭이는 자』에서 그런 인물이 있냐고!? 글쎄, 모두가 그렇지 않은 인물일수도 있고, 어쩌면 모두가 그런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래도 정확한 것은 직접 만나보시길…!! ^^;;

 

“누군가를 자주 접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고 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법이지…….”




 아이들에 대한 끔찍한 범죄라는 사실이 상당히 불쾌하지만, 이중삼중으로 교묘히 짜인 범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책을 손에서 쉽게 떼어놓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게임을 던져줄 것이다. 그 게임은 책을 놓은 후에도 당신을 쉽게 그 이야기에서 떼어놓지 않게 만들 것이다. 어쩌면 그 새로운 게임이라는 것이, 당신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고, 지금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들을 낯설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모르지 뭐, 이 소설이 영화로도 나온다는 이야기를 조만간 듣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암튼! 올해가 이제 1/4 이 지났고, 앞으로 남은 3/4 의 날들 동안 아직 만나봐야 할 작품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겠지만, 이 책… 왠지 대박의 냄새가 솔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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