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멈춤 - 서른 살, 지독히 서럽고도 행복한 여행 순례자
김진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항상 걸음이 빠르다는 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 급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닐 때조차도 항상 빠르게만 걷는다. 천천히 걷자고, 무조건 앞만 보며 걸어갈 것이 아니라 주위를 좀 둘러보면서 길을 가자고,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풍경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보자고, 아니, 적어도 곁에 있는 사람과 발은 맞추자고, 몇 번이고 다짐 해봐도 그때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걷는다’는 것 자체에는 전혀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의미를 두고, 두지 않고 가 문제가 아니라 ‘걷는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저 어딘가를 가기위한 수단으로 걷는 것을 선택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더 절실하게 걷고 싶어졌다. 어딘가를 가기위한 수단이 아니라, ‘걷는다’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걷기를 하고 싶어졌다. 『시간 멈춤』을 만난 이후로 말이다…

 

안녕! 우리 느긋하게 마음껏 그 길들을 걷자! 

오솔길을 걷든, 눈길을 걷든, 혼자 걷든, 함께 걷든……. 

우리 행복하게 걷자!  -P322 


 『시간 멈춤』은 ‘서른 살, 지독히 서럽고도 행복한 여행순례자’라는 그 부제를 고스란히 옮겨 적는다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정확한 소개가 될 것이다. 이십대와 삼십대의 경계에서 쉼표를 찍고 떠난 저자의 서럽고도 행복한 여행의 이야기! 그이상의 어떤 설명 필요하겠는가?! 행여나 뭔가가 더 필요하다면 그건 책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책에서 피어나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받기위한 열린 마음이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 마음에 약간의 부러움을 더해 ‘김진아’라는 이름의 여행 순례자가 전해주는 행복한 아픔에 귀기울여보는 것이다. 

  그녀는 길을 걷고, 또 걷는 그 순간순간들마다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을까!? 그리고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시간 멈춤』을 통해서 만나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던가!? 생각이라는 것이 하면할수록 명확해졌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생각이라는 그 자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저런 나의 생각들이 저자의 생각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또 다른 감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혀 혼란스러워할 이야기가 아닌데, 내 속의 뭔가가 자꾸만 그렇게 만들어 쉽게 책을 읽어나가지 못했다. 내가 하지 못한 경험을 누군가가 했다는 사실에 대한 질투인 것인지,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생각들을 누군가가 했고, 그것이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기에 느껴지는 부끄러움 때문인 것인지, 뭐라고 어느 한가지만을 콕! 찍어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분히 매순간 느낀 감정들의 감성적인 나열이 될 수밖에 없는 여행의 이야기가, 그 순간들에만 한정되는, 그래서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까. 카미노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 

몸에 밴 욕심이다. 무엇을 얻기보다 다만 버릴 수 있길

산티아고로 가는 나에게 부탁한다.  -P324

 이런 것이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은… 항상 뭔가를 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하는 나에게 그것은 욕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얻기보다는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한 적이 있었던가.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그들 각자가 짊어지고 가는 배낭의 무게가 곧 그들 각자의 삶의 무게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배낭에 많이 넣어서 그것을 감당 할 수만 있다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역시 욕심일 뿐인 것이다. 지금 이 공간이, 그리고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 비록 산티아고는 아니지만 이제 나에게도 부탁 좀 해야겠다. 무엇을 얻기보다 다만 버릴 수 있길…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으니 지금, 바로 지금을 살라고

더 많이 표현하라고, 더 많이 느끼고, 버리라고 

그들은 속삭이고 있었다.  -P190
 


 앞서 말했던, 질투심과 부끄러움, 그리고 수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느껴지던 행복함 때문이었다. 아프지만 행복한 느낌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 길 위에서 만난 모든 것이 위로가 되고, 때로는 반대로 그 모든 것들을 위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아프게만 느껴지고, 더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책을 읽는 순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멈춰 서서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 생각들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보고 싶었는데 결국 뜻대로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언젠가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해서 걷다보면 내 생각들이 진짜 내 것이 될까?! 걷고 싶어진다. 한걸음 한걸음,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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