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밀실살인게임 1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어떤 것을 통해서 한 번 느낀 즐거움은 두 번, 세 번이 반복됨에 따라 처음에 느꼈던 즐거움은 차츰 사라져만 간다. 이미 한 번 겪은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식상하게 된다는 말이다. 굳이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정말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막상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물론 즐겁고, 한없이 기쁘다. 하지만 시간이 또 지나면 어떻게 되는가. 즐거움은 익숙함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그것이 권태로, 그리고 허무함과 무기력함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오히려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이 더 즐거웠다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그러고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권태, 지루함 등의 단어로 나타나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더더욱. 사람이라는 그 자체가 그런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자극적인 뭔가를 갈구하는 것 말이다. 

  추리 소설을 접하게 되고, 그 재미에 빠지다보면 언젠가 부터는 그것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접한 추리 소설을 통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찾게 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껏해야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찾거나, 자신들이 직접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 문제를 만들어내는 정도일 텐데, 이를 뛰어넘어 직접 만든 문제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이 있다면 믿겠는가!? 아,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아무튼, 자신들이 직접 만든 트릭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다. 이미 많은 작품으로 알려진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이다. 

  ‘두광인’, ‘044APD’, ‘aXe’, ‘잔갸 군’, ‘반도젠 교수’라는 닉네임을 가진 다섯 사람이 인터넷 공간에 모여 있다. 이들은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 사람이 문제를 내고 나머지 사람들이 답을 맞히는 추리 형식의 이 게임은, 보통 인터넷 공간에서 펼쳐지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은 2차원의 세계에서 단순히 말로써 하는 게임이 아니라, 그곳에서 뛰쳐나와 3차원의 세계에서 직접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그들은 문제를 만들어 내기위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인이라는 행동을 말이다. 차례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문제를 만들고-그 속에 살인이 포함되어있다-,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단서들을 제시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맞추는 것이다. 제대로 된 단서도 던져주지 않은 채 답을 찾아보라고 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얼마나 공평한가?! 책 속의 등장인물들과 책 밖의 내가 공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일단, 트릭을 위한 살인이라는 도덕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는 사항을 제외하고서, 추리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저 즐거울 수밖에 작품이다. 

  정말 다양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다섯 사람이 돌아가면서 문제를 내고, 그 정답을 맞추어가는 과정을 나 역시도 그들 틈에 숨어들어서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나의 추리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한 번쯤은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시간들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히 문제를 내고, 그 트릭을 알아맞히는 것의 반복에만 그 모든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흘러간다’는 구조 또한 더 없이 멋진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각각의 이야기들과 다섯 사람이 한 점으로 모아지면서 이야기가 보다 큰 틀에서 진행되어가는 반전을 맛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추리와 스릴러 장르의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을 때 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찾아보니 아주 간단하면서도 멋지게 그들의 정의를 내린 글을 보게 되었다. 스릴러의 거장으로 알려진 ‘제프리 디버’가 한 말이라는데, 미스터리가 던지는 질문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이고, 스릴러가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고 한다. 미스터리가 독자들에게 퍼즐을 던져준다고 한다면, 스릴러는 독자들을 롤러코스터 맨 앞차에 태운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밀실살인게임』이 이 두개의 장르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혹은 “그 일은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향한 글이었다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향한다. 갑작스럽게 추리에서 스릴러로 변화되기까지 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까지 만날 수 있음에 더 놀랍고도, 매력적인 느낌이 아직도 나를 놓아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 뭐, 쓸데없이 복잡하게 이야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다양한 놀라움으로 재미를 준다는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강추한다는… 뭐 그런 것이다.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를 짓누르고 있던 어떤 감정-앞서 언급했던 도덕적인 측면…-을 즐거움이라는 이름하에 계속해서 숨겨둘 수는 없었다.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 죽인 게 아니라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어서 죽였지.” 라는 나를 사로잡던 단 한 줄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씩, 아니 한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의 문제로 넘어가는 그 순간순간마다 두 가지 감정이 공유했다. 다음은 또 어떤 트릭이 날 사로잡을까, 라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생각과 그 트릭을 사용함에 있어서 희생이 되는 사람이 이곳에 모인 다섯 사람의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군가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나 역시 이 다섯과 별반 다르지 않은-악랄하다고 할만한- 또 하나의 생각이 그것이다. 재미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데, 반대로 나를 포함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단순한 재미를 위해 죽어간다면!? 이 일들이 마냥 즐겁게만 느껴질 수 있을까!? 

  마냥 즐겁게만 느낄 수 없다는 나의 생각은 그저 너무나도 앞선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잘 생각해보면 일종의 스포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 앞선 생각 따위는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작가는 그 부분에 있어서 어떤 세심함을 놓치지 않는다. 나의 악랄한 생각, 그저 단순한 상상이 책에서 펼쳐지게 되는 것이었다. 단순히 써보고 싶은 트릭으로 인한 살인, 흔히 이야기하는 묻지마 살인이라는, 어쩌면 그 끝을 알고서도 허무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그렇게 허무하게 끝맺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우면서 대단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밀실살인게임』은 본격 미스터리물에 가장 적합한 공간을 창출해내면서, 그 공간 설정에 사용되는 도덕적 측면까지 고려한 하나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야기는, 추리에서 스릴러로 넘어가는, 어떻게 보면 전혀 짐작도 못했을 만큼의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To Be Continued”라는 단 한 줄의 마무리도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마무리되기도 하면서, 단순히 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황당함과 또 다른 설렘 등이 뒤죽박죽 섞여 묘한 매력으로 남겨진다.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매력들을 던져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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