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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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라고 정의되는 중독. 라디오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주로 게임 중독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게임을 이야기하면서, 그 게임으로 인해 끼니를 거르기는 아주 기본적인 상태부터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극단적으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상태 등의 이야기들을 심각하게 들려주었다. 심각한 중독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위험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나 또한 그렇지만, 남의 일이거니, 하면서 별 생각 없이 그냥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중독이지만, 게임이 아닌 아편에 중독된 한 남자의 이야기. 보는 시각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교훈으로 다가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또 다른 -그것도 호기심이 상당히 풍부한- 누군가에게는 위험천만한 것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바로,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다. 

 이 책은 ‘토머스 드 퀸시’, 그 자신의 지난 삶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의 학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아편을 어떻게 시작했고, 그것이 주는 즐거움은 무엇이었으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단순히 여기에서 그쳤다면 앞서 말한 ‘위험천만함’의 경지를 보여줬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아편의 중독된 이후에 이어진 고통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정도는 ‘교훈’쪽으로 돌아서게 된다. 뭐 물론, 무엇을 이야기하든 이 책이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각자 다른 것이겠지만……. 아무튼! 드 퀸시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다보며, 독자들을 그와 동행하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그와 그를 둘러싼 연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는 것,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한없이 지루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아편에 중독되어 그것이 뿜어내는 연기에 둘러싸인 사람의 삶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물론, 어떤 흥미진진함으로 긴장감을 가지게 하기보다는 한없이 몽환적이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늘여놓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겠지만,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생각 외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가, 보다 깊이 그의 삶에 빠져들게 되고, 그가 가졌던 문제들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가 무엇이냐, 즉 문제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일단, 어떤 문제를 제대로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 속에, 혹은 그 문제의 곁에 놓인 나 자신을 먼저 파악하는 것 또한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파악했으나 나와 별개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 혹은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나 타인에게 비춰질 나의 모습이 더없이 형편없게만 느껴진다면 더더욱 말이다. 이 말들이 어쩌면 당연하게만 느껴지겠지만, 그 당연함이 쉽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니 더 문제가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그 자체로도 얼마나 용감한 것인가! 다양한 이야기들에서 접하는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폐인-혹은 그 비슷한-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알코올 중독과 연결되는데 반해, 드 퀸시는 아편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가 연기 속에 갇혀있을 그 당시에는 아편이 불법이 아니었으니 지금의 담배를 이야기 하는 것과 그리 다르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용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떤 진실과 마주함으로써 앞으로의 삶, 아니 지금 당장의 삶을 살아갈 힘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쓴 드 퀸시도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로 인해 많은 독자들도 어떤 힘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공사의 ‘세계문학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지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도 그렇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작년에 세웠던 ‘세계문학읽기’라는 목표는 그냥 목표에서 그쳤지만, 이제야 조금씩 실천하는 재미를 맛보는 것 같다. 다음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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