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와 책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고, 알려지면서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 영화를 먼저 볼 것인가, 책을 먼저 볼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실망을 많이 했었던 지난 대부분의 경험에 따라, 보통은 영화를 먼저 보고는 했었다. 맛있는 것을 제일 나중에 먹으려고 살짝 남겨두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용의자 X의 헌신』에 대한 나의 선택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 물론 『용의자 X의 헌신』같은 경우 책으로 먼저 알려지고 영화는 그 후에 나왔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점에 알게 되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주시길…)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지난 경험에 따라 정해진 나름의 규칙(?)이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장르가 추리/미스터리 같이 무한한 상상을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무작정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보다는 역시 책이 제 맛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로 인해 모든 스토리를 아는 상태(대부분 책과 영화는 스토리가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기도 하는데, 『용의자 X의 헌신』같은 경우 거의 비슷했다.)에서 책을 봐서 일까, 김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사실 『용의자 X의 헌신』은 영화도 책만큼이나 훌륭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더 많이 이끌어 낼 수 있는 즐거움을 영화 때문에(?) 뺏겼다고 생각하니 살짝 억울한 감이 들기도 했다. 뭐, 횡설수설 하는 것 같지만, 결론은 그만큼 『용의자 X의 헌신』이 멋진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완벽한(?!) 알리바이로 수사의 맹점을 파고드는 천재 수학자(수학 선생이기도한…) ‘이시가미’와 냉정하리만큼 이성을 앞세우는 물리학자 ‘유가와’의 대결(?!)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용의자 X의 헌신』은 혹시나 하게 될지도 모르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 모든 행동을 실제도 행하게 하는 ‘이시가미’의 완벽함을 보는 재미와 ‘이시가미'의 행동을 보고, 그것을 단서삼아 문제를 파고드는 ‘유가와’의 능력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한 작품이다. 완벽한 추리나 스릴러를 예상했던 나에게 생각보다 은밀하고, 스릴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전해주지는 못했지만(이건 순전히 다른 예상을 했던 나의 잘못이니 넘어가자.), 그와는 전여 다른 재미를 전해주는 작품이라 할 만 하다.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착각하기 쉬운 맹점을 살짝 찔러주지요.”
“아, 맹점 말이군요.”
“예를 들면 기하학 문제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식이죠.” - P276

 

이 책의 띠지에는 “이건 추리소설로 위장한 거룩한 사랑의 기록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절대 공감한다. 사실, 『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미스터리 또는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또는 헌신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이란 더 큰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본다”라고 하는 것은, 대결에 초점을 맞춘 광고에 현혹(?!)되어 제목만 봐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지나쳤다는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아가면서도, 그 벼랑 밑으로 곧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일까?! 이유 없는… 그래서 ‘무조건’이라는 말밖에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행동들이 사랑이라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그 ‘이유 없음’ 이라는 것이 단지 누군가의 언어로 표현되지 못할 뿐,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것.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랑의 이유가 사실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자신을 위한 사랑이든, 타인을 위한 사랑이든,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런 열정 가득한 사랑을 동경하고 꿈꾸는 것이다. 그렇기에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느끼는 사랑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분위기를 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반대편의 생각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작은 행동이 생각 없는 행동으로 바뀌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사랑이나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빛나겠지만, 그 사랑과 희생, 헌신이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라면 그런 것들이 과연 그 이름 그대로 빛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을 누군가가 사랑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 사랑은 누구를 위한 사랑일까, 라는 생각까지……. 

 

뭐 어떤 것이라도 좋다. 타인을 위하든, 자신을 위하든,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저 좋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만큼, 나와 내 주위 사람이 아닌 타인을 조금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차마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말은 못하겠다)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한 그것이 많이 필요한 오늘날의 세상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어떤 것에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그래서 그 단어 스스로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모습의 사랑이 가득한,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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