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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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 거지? 르포 같은 거라도 쓸 생각인가?” 

아뇨, 그저 애도할 뿐입니다.” - p44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병이든 사고든 심지어 자살이든, 그 어떤 이유라도 상관없이 사람이 죽은 곳이라면 어디든 그 장소를 찾아다니는 남자. 사람이 죽은 장소를 찾아가 고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고 다니는 남자. 사람이 죽은 장소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 그 이상한 행동이라는 게, 왼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가슴으로 가져오고, 왼손은 땅에 닿을락 말락 하게 내렸다가 가슴 앞에서 오른손과 포개는 것을 말한다. 그와 동시에 뭔가를 외우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기도 하는……. 누가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뭐냐, 이 녀석은, 뭐냐, 이놈은?’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 남자.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애도하는 사람』은 제목 그대로 “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당사자의 생각이나 느낌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애도하는 사람”은 타인에 의해 그저 관찰되어 질뿐이다. 주간지 기자 ‘마키노 고타로’, “애도하는 사람”인 사카쓰키 시즈토의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 남편을 살해하고, 그 죗값을 치루고 나온 ‘나기 유키요’. 세 사람이 그 타인이 되고, 이야기에서의 중심이 되어 시즈토의 모습을 그려낸다. 주간지 기자 ‘마키노 고타로’, 그는 말초적 신경을 자극할만한 아주 자극적인 기사를 소설처럼 써내는 기자이다. 우연히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를 알게 되고 그로인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남편을 살해하고, 그 죗값을 치루고 나온 ‘나기 유키요’. 그녀는 -그녀가 죽인 남편을 안고- 시즈토의 애도의 길에 함께 하게 되면서 비로소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즈토의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 그녀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계속해서 아들을 기다리지만, 일부러 불러들이지는 않는다. 그를 이해하기에 ㅡ. 세 명 모두가 가까운 곳에서 시즈코를 지켜볼 수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즈토를 받아들이기에 -특히 준코는 그의 어머니이기에 더더욱- 그를 이해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애도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 위선과 가식?!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문득 생각났다. 피곤함에 절어 점점 지쳐가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찾아와 절하고, 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들과 마주해야만 했던 순간들 ㅡ. 그 사람들과 절을 하고, 의례적인 위로의 말들을 주고받아야만 했던 순간들 ㅡ.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피곤함과 뭔지 모를 감정으로 끝임 없이 짜증만 솟구쳐 올랐다. 조문하는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저 예의에 불과한 말로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의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이 정말 그런 말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일까’라는 말도 되지 않는 우월감 같은 것들로 인해 주위 모든 것들이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그 순간들에 느꼈던 것들이 그저 단순한 피로와 상실감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 변명해보지만, 그 순간 느꼈던 그 감정들을 완벽히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그 감정들이 “애도하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옮겨갔다. 적어도 처음에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의 ‘애도(哀悼)’도 알겠고, 시즈토가 애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왜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쉽지만은 않다. 더군다나 전국을 떠돌며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 애도를 하는 것이라니……. 소위 말하는 ‘아는 사람’도 아닌데, 뜬금없이 나타나 그 ‘모르는 사람’에게 애도를 표시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뭘 위해 저런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인지 일단은 의심부터 생기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위한 단순한 쇼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까?! 행여 좋게 봐준다고 하더라도 그저 어떤 종교에 심취해서 행하는 일시적인 행동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더군다나 그 애도하는 사람은 애도의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아이이든, 병으로 죽었든 사고로 죽었든 심지어 자살로 죽었든 전혀……. 그러니 더더욱 모순되고 가식적인 모습으로 밖에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당사자인 “애도하는 사람”은 이야기한다. 당연히 모순적이라고,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차라리 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ㅡ. 그래, 그것이 그를 이해하기에 쉬울지도 모르겠다. 이해라기보다는 인정이겠지만……. 

 

 - 그저 애도할 뿐?! 

 

내가 “애도하는 사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왜 ‘애도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고, 그 이유를 무조건 머릿속에 넣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에서는 사람들이 “애도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애도하는 사람”은 위선자가 아니라는 단편적인 사실에서부터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역시 쉽지않은 일이다. 책에서도 사실, 『애도하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정확한 논리는 제공되지 않는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제공될 거리도 없는 것이다. 그는 그저 애도할 뿐이기에 ㅡ. 

 

애도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에서 벗어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애도를 받는 사람이라면?!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그래도 나를 위해서, 나를 이야기하고, 나를 생각하며, 나를 애도한다면?! 가끔씩 나이 드신 분들이 “내가 죽으면 제삿밥이나 얻어 먹을 수 있을까?!”라는 말씀을 하고는 하신다. 따지고 보면 제사라는 형식과 절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잊힌다는 것이 슬퍼서, 제사라는 핑계로나마 가끔씩이라도 기억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이기적이기만 한 자기 만족으로 비춰질 수 있는 타인에 대한 애도가 때로는 정반대의 이타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다. 

 

 - 죽음에 대한 경중?!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경중을 따지는 행위는, 

나아가서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숨에 대해서도 

경중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 작가 인터뷰

예전의 우리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구분을 두어 사람과 사람사이에 경계를 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경계와 차별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자본주의라는 큰 틀에서 돈이라는 수단으로 또 다른 경계가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현실과 달리 -이상적으로는- 누구나 평등했으면 하는 -정말 당연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며 세상도 그렇게 진화를 해간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을 하며,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애도하는 사람』을 통해 또 다시 나의 부족함만을 확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죽음에 경중을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말 많은 사건사고 중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연예인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추도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 바로 나였다. 물론 누군가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그것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곳에서 생사확인이 되지 않은 채 물 속 어딘가에 있을 장병들과 비교하며 혀를 차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생(生)에는 경중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死)에는 경중을 따지고 있었고, 결국 그것이 다시 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음에 반성을 하게 되고, 그것이 생과 사의 순환 고리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ㅡ. 

 

 - 가족 그리고 다시 생(生)  

 

“애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누구나 인정할 만한 아쉬움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애도에는 충실하지만 자신의 가족에게는 한 발 늦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시즈토의 행동에 있다. 그런 행동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답답해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그런 시선과 달리 가족들은-특히 그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그를 감싸 안는다. 그것이 가족이고, 가족이기에 또 그는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해가 결국에는 눈물로 이어지지만 그 눈물은 다시 희망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로인해 『애도하는 사람』이 단순한 슬픔에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없이 슬프게만 바라볼 수도 있는 삶과 죽음에서 그 속에 담긴 본질적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애도하는 사람』은 나를 정말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끄럽게 만들게도 하면서, 또 다른 생으로 삶의 힘을 안겨 주기도 하였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죽음을 희망으로 바꾸는 동시에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랍기만하다. 감히 2010년 최고의 책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ㅡ.


이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을까요?” - p65

‘내가 죽고 나서 누군가가 죽어있는 나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해온다면 어떨까?!’라는 마지막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 대답은 누구나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단순한 생각만이 아니라, 풍성하면서도 부끄럽지 않게 느껴질 만한 대답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한다. 살아있을 때 풍성함을 말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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