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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ㅣ 세계문학의 숲 1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2010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올해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들을 떠올려본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건 뭐 제대로 해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책과 관련된 목표에 대해서는 특히 더하다. 2010년에는 소위 말하는 고전부터 시작해 세계 문학 작품들 좀 제대로 읽자는 소소한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는 결코 소소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결과가 소소했고, 내가 소소한 것이었다. 다양한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만 하면서 실제로는 단순히 재미만을 찾는 독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0년이지만, 다시 ‘내년에 재도전!!’이라는 생각보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조금씩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작품을 만나 본다.
2010년의 끝에서 내가 만난 작품은, 2002년 노벨연구소 선정‘54개국 작가가 뽑은 최고의 세계문학 100선’중 하나이자 독일 근대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인,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다. 이는 시공사에서 2010년 창사2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내놓은 세계문학 총서의 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 어떤 것이든 ‘시작’이라는 것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그 의미 있는 시작을 알리는 책으로 선택된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라면 이 작품의 가치에 대해서는 다른 언급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다. 엄청 맛난 음식을 파는데, 주인장은 불친절한, 그런 식당에 갔다 온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불친절해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주변의 다른 여건과는 상관없이- 그곳의 맛난 음식이 계속 그리워지는 그런 기분도 경험해 봤으리라.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 그런 식당 같았다.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내 그 맛에 빠져버리고 마는… 그래서 또 찾아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식당, 아니 그런 작품 말이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누구의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뜬금없는 흥얼거림은 무엇인지. 뚝뚝 끊어지는 흐름에, 심지어 이 작품이 단편집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래. 이건 나 같은 사람에겐 한없이 불친절함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작품의 해설에서 이런 것들을 ‘의식의 흐름’또는 ‘내면의 독백’기법, ‘몽타주 기법’, ‘공감각적인 텍스트’등등으로 표현하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익숙함의 차이였다. ‘이 식당 원래 그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아버리는 순간 불친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 작품도 ‘뭐 원래 이런 식이야!!’라고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뭐, 미리 알아두면 괜찮을 것 같아서...;;;;
바야흐로 형벌이 시작되고 있었다. - P14
이제 우리는 ‘프란츠 비버코프’라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가 테겔 감옥을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4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보통이라면 새롭게 자유를 부여받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함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는 두려움부터 느낀다. 그 순간을 형벌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의 새로운 삶은 시작된다.
앞서 밝혔듯이, 프란츠 비버코프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그의 삶이 그리 복잡하지만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감 생활을 끝내고 세상에 나온 한 남자가 겪게 되는 새로운 삶이라는 한 줄로 요약될 만큼 말이다. 사실 줄거리는, 각 권의 시작에 앞서서 이야기되는 것들과 각 장의 제목들을 통해서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단순한 줄거리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것은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28년경 베를린의 모습들과 사회적 큰 혼란으로 인한 전환점을 앞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 중 하나인 프란츠의 의식을 통해 생각해보는 인간 본성,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 등.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이런 거대한 흐름으로 작가인 ‘알프레트 되블린’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실들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들도 언급했지만, 사실 내가 이런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표현을 하면서도 솔직히 나조차도 아직 완벽하게 이 모든 즐거움들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걸작이라고 부르는 한 작품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은 단 한 번의 독서로 마무리하는 것 또한 무례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곁에 두고 긴 호흡으로 몇 번이고 다시 천천히 이 작품의 즐거움을 찾아가야 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다음의 독서에는 또 어떤 즐거움과 느낌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