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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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진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다면 무슨 재난 영화의 한 장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일들이 실제 우리의 현실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던 나에게는, 다리와 건물을 그따위로 만든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뒤섞임이 전부인, 어처구니없는 단순한 참사로만 다가왔다. 한국 현대사라는 커다란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역사의 새로운 바람 속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건들인데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빠르지도, 그리 늦지도 않다고 생각되는 지금의 순간에 그 순간들을 기점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황석영의 《강남몽》을 통해서 ㅡ.

《강남몽》은 총 5장으로,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툭 잘라내,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1995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잡는다. 다리와 백화점의 무너짐이 시작이지만 그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마지막이기도 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백화점이 무너지는 순간, 그곳에 들렀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박선녀의 이야기로 1장은 시작된다. 우연의 연속으로 화류계에 발을 들이게 되고, 고급 술집과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결국 국밥집 딸에서 어느 회장의 후처로 신분상승을 하게 되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이 책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2장에서는 박선녀의 남편인 김진의 일생이 담겨있다. 만주에서 헌병대 밀정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그 이후 뛰어난 생존본능 그 이상의 감각으로 재력을 쌓게 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3장에서는 심남수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역사-지금도 여전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동산업을 통해 그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4장에서는 폭력 조직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조양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 5장에서는 박선녀와 함께 무너진 백화점 밑에 깔리게 되는 임정아와 그의 가족을 통해 그 시대의 아픔을 들려준다. 각 장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이 다섯 명의 인물을 통해서 우리는 근현대사의 큰 줄기를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강남 형성사’라는 작지만 큰 이야기에서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의 모습이 어떤지를 먼저 둘러봐야 할 것이다. 앞서 중학생에 불과했던 나에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건은 단순한 참사로만 다가왔다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작가의 말대로- 역사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과 개발독재의 종언’이라는 큰 의미를 불어넣는다면 그 시점을 전후해서 뭔가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것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말이다. 그전과 후가 완벽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완벽히 혹은 전혀 라는 말을 쓰거나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는 큰 혼란 속에 놓여 있다는 생각만 든다. 지금 나의 모습, 당신의 모습,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 더는 논쟁할 가치도 없어진 듯 보이던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행태로의 부활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괴로움, 아니 쓰레기더미 속으로 던져놓는다. 시대의 양면성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어느 시절, 정수라가 〈아! 대한민국〉을 부르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 동안 또 다른 곳에서는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을 부르며 소리치던 그 사이의 공간들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해결 해 나가야 할까?!

어떤 문제든 해결을 위해서는 그 시작을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현재의 삶을 규정하는 최초의 출발점을 향한 《강남몽》을 통해 그 속에 존재하는 시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덧없음을 넘어서 오랜 시간에 상처를 새겨놓은 꿈(夢) 속에서 말이다. 앞으로 앞으로, 빠르게 빠르게만 외치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경고와 그 속에 잠재하고 있던 부실이라는 이름이 다리와 백화점의 무너짐을 단순한 참사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무너짐이라는 사건이 아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사회를 향한 경고를 이끌어내고, 부실이라는 이름을 낳은 사람들과 시간의 이야기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을 한마디로 꿈(夢)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신분 상승의 꿈, 그 욕망의 꿈틀거림. 그 꿈을 위해 그들이 걷고 있었던 순간들도 결국은 꿈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 꿈을 꾸기 위해 발버둥치고,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또 누군가는 빨리 깨버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꿈이라는 공간 속에 놓인 사람들. 그 꿈이 낳은 지금 우리의 모습들. 꿈이 아닌 우리의 지난날, 그 현실의 무너짐을 통해서 다시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과거가 되는 내일, 그리고 그 내일이 미래가 되는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본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꿈이란 것이 있었던가 묻고 싶어진다. 단순히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간에 스쳐 지나갈 꿈-기억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같은 것을, 진짜 나만의 꿈인 양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혹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내 꿈도 아닌 것을 내 꿈인 양 따라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라는 니체의 말과는 다르게, 지금 우리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강남몽》의 마지막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여기 사람 있어요……” 라는 대사가 있다. 이를 두고서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희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흔히 사람들은 힘든 일, 슬픈 일, 마주하기 싫은 일들이 일어날 때면,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설사 꿈에서 깨어났다고 해도 그다음의 순간들에 좋은 일, 기쁜 일, 언제나 행복한 일들만 가득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칫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가는 모든 것이 부질없고, 덧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겠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희망이든, 절망이든, 그 어떤 것들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많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떤 꿈을 꿀 것인가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커져 버린 사람과 사람, 시간과 시간 사이를 뚫고 지나온 지금 이 순간이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꿈-그것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혹은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이든, 지난 과거이든, 미래이든, 그 꿈 역시 스스로의 몫이겠지만-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어떤 꿈이든 꿈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끊임없이 던져지는 생존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발 빠른 진화. 우리는 그 속도에 발맞춰 작품의 몸뚱어리 그 자체로 그려내는 단순화와 속도감을 읽어낼 수 있다. 낡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광복 반세기 식의 대하소설이라는 형식을 버렸다는 사실에서 어쩌면 더 환영받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쉽다는 생각 또한 많이 남는다. 아니, 단순한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다. 뭔가가 부족해서가 아닌 뭔가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황석영이라는 이름으로 다루는 이런 이야기들을 이 한 권의 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단순화와 빠른 속도감에서 풀어내는 꿈의 이야기들, 그 이후에 오는 어떤 거대한 힘에 무릎을 꿇게 된 무기력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 어떤 감각이든, 이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새로운 또 다른 꿈으로 태어나 살아 숨 쉴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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