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한 남자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 여자가 다가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는 것이 왠지 찝찝해서 계좌번호를 적어주면서 그 여자의 얼굴 사진도 한 장 찍고서야 돈을 빌려준다. 잠시 후, 멍하게 앉아있는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며 다가오는 웬 남자에게는 “꺼져!”라는 한 마디를 날려준다. 텔레비전에서는 축구경기가 한창이란다. 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단 5페이지의 《약속》이라는 단편의 줄거리-라고하기보다는 전부라고 해도 될…-이다. 당황스럽지 않은가?! “도대체 이게 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음… 아무리 짧은 소설이라도 문학적 소양 없이는 받아들이기 힘들군…….” 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계속되는 당황스러움 앞에서, 결국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에 담긴 이 소설들이 이상한 거라며 가만히 있는 작가에게 이 모든 원망을 돌려버린다. 그러고는 가만히 책을 덮어버린다. 그런데 어쩌지?! 아, 궁금하다. 이 소설 속의 남자, 과연 돈을 받기는 받았을까?! 

 

무엇이든지 ‘생각’을 하며 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해본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책으로 인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더더욱 이런 생각에 공감하리라. 황당하다는 생각이 결국에는 당연하다는 생각에 미친다면 이런 생각에 더더욱 공감하리라. 뭐가 이렇게 황당하냐고 했던 생각들이, 가만히 덮어버린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써 금방 무장해제 되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생각 없이’ 책을 읽고자 했다면, 최소한 책의 제목은 ‘기억’했어야 했는데……. 가만히 있는 작가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던 짧은 순간들을 반성하며, 나의 생각 없음을 스스로 야단치고야만다. 제목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고 하잖아. 당사자들 외에는-때로는 당사들조차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니까 내가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황당해 하는 것도 -나의 무지가 아닌- 당연한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뒤늦게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 다행이며, 그로인해 멋진 작품을 정말 멋지게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생각하며 상상해본다. 

 

갑자기 무슨 상상이냐고?! 뜬금없겠지만 잠시만 들어보길 바란다. 삶이 답답할 때면 가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내가 모두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로또부터 하나 사는 것을 시작으로 골치 아픈 일들, 위험한 일들은 모두 피해가고, 즐겁고 신나는 일들만 가득한 곳으로 나 스스로를 이끌어야 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래를 모두 안다고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까?! 당연하게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상 속의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는데, 설렘과 기대라는 기분 좋은 것들을 알 리 없지 않은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 상상력이라는 결론을 내려 본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라는 선물을 맘껏 발휘하게끔 하는 소설이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따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ㅡ.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 담긴 13편의 이야기들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로봇 3원칙이라는 허울 좋은 미끼로 여자를 가지고 노는 남자와 그의 말발(?!)을 조금씩 이해하겠다는 답답한 여자의 이야기(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이후 그녀가 찬찬히 생각하고 난 후의 행동은 뭐가될까를 상상하게 되는 《로봇》, 죽은 채 사랑하는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 《밀회》,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해놓고 다른 방을 쓰게 하는 여자와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퀴즈쇼》등등 ㅡ. 과거에 무슨 일이 있어난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의 끝,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자꾸만 상상하게끔 하는 이야기들이 쭈~욱 이어진다. 

 

책의 다양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제목을 정말 가슴 속 깊은 곳에 새겨놓으며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랬듯이, 책을 통해서 느끼는 즐거움은커녕 애꿎은 작가만 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작가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내가 조금이나마 그의 수명을 늘렸으니 퉁~ 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목을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생각하고, 책을 읽어나간다면 예상치 못한 유쾌함이, 그 누구도 모르게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불현듯, 제목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이전까지 알지 못했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이 책의 제목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만 새겨놓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하고, 혹은 침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상하게 되고,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상상하게 된다. 그 상상은 자유롭다.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다. 앞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 상상력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재앙’ 역시 상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식상한 말을 외치며, 상상이 나아가야 할 길 또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해본다. 언젠가는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미래도 상상이지만, 사람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의심 같은 것들도 상상이라고 할 것이다. 요즘 이슈가 되는 것을 예로 든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더 쉽게 이해 할 것이다. 어느 스포츠 스타와 코치와의 결별을 문제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내세운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그런 행동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몰고 가며 그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말들을 남긴다. 다시 그 반대쪽의 입장을 내세운 기사를 보고는 ‘그러면 그렇지’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네’라는 식으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말을 바꿔버린다. 소위 악플이라는 것을 남기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그 행위 자체도 큰 문제지만, 그 행위를 낳게 한 지나친 상상도 큰 문제가 아닐까?! 왜 사람들은 지 멋대로 상상하고, 지 멋대로 결론지어 버리는 것일까?! 자기들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에 놓여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물론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이 책의 제목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물에서 재앙으로 옮겨지는 상상력과 다시 재앙에서 선물로 옮겨가야할 상상력에 대한 자세를 이야기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 던져주는 유쾌함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본다. 어쩌면 ‘이 책에 유쾌함 따위가 어디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시 찬찬히 생각을 해보자.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 현재가 만들어 낼 미래가 놓여있다. 당연하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놓여있는 현재보다 더 궁금하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와 미래이다. 과연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기에 유쾌함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즐긴다면 오히려 더 유쾌하게 다가올 것이다. 

 

너무나도 복잡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여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는 이런저런 복잡한 것들을 떠나서, 그 무엇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상력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고, 그 숨 쉬는 이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은 저마다의 상상력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 이제 당신은 어떤 상상으로 지금 이 순간과 마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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