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순교자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목사님의 신 - 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 P37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는 내내,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말이 되어버렸다. 어렴풋이 예전부터 하고 있던 생각인데 『순교자』를 통해서 더 심각하게 생각을 해본다. 오늘 날,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는 전쟁과 기아, 그리고 짐작조차 하기 힘든 수많은 고난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그들만의 신을 모시는 자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가끔씩 그런 생각도 해본다.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과연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으며, 그 어떤 고난도 없이 살아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 그것도 아닌데 왜 신을 믿으며, 타인에게까지-그것도 귀찮게 하면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인지. 그들이 진정 그들의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면 지금 당하고 있는 그 많은 고난과 고통들은 마땅히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들을… 여기서 잠깐, ‘그것은 신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부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나의 짧은 견해와 나의 머리, 나의 마음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으니까… 뭐, 지금의 나로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떨지 모르니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아직 저 질문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6·25전쟁 직전 평양에서 목사들의 집단 처형 사건이 발생한다. 열네 명의 평양지역 목사들이 공산군에 체포되었고, 그 중 열두 명이 처형당한 것이다. 순교자가 되어버린 열두 명,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단 두 명, 그들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의 시작에 있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미스터리한 사건 그 자체만을 생각했고,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만을 찾아 헤매었다. 이야기의 중반쯤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그때에 이르러서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진실이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으로 이제는 그 시작조차도 혼란스러우니까…
진실과 거짓 ㅡ. 단순히 진실이다, 아니다 구별해내는 무슨 TV 프로의 이야기 같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의 진실과 거짓, 그리고 그것들 둘러싼 많은 생각들은 TV 속 결론처럼 간단하지 않다. 진실과 거짓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 끌어내는 인간 영혼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순교자』에서 순교자가 되는 열두 명의 목사들에 대한 진실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민하고 갈등한다. 왜, 무엇때문에?!
『순교자』는 진실은 묻어둔 채 사람들이 알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려주며 그들의 목적-그것이 신앙이든 전쟁의 승리이든, 혹은 인간 그 자체를 위하는 것이든 상관없이-이라고 할 만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는 사람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대립만이 아닌,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이 되기도 한다.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 P152
“젊은 친구,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소?” - P103
진실이 반드시 중요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인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게끔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은 것일 수도,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모르는 게 약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들 말이다. 또한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어떤 진실보다는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는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로인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저라면 진실을 얘기하겠습니다.” - P154
계속되는 거짓에 놓여진 채,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거짓을 말하는 것이-설사 그것이 듣기에 좋은 말일지라도-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거짓을 말하면서 결국에는 그들의 신앙을 비롯한 또 다른 목적을 위한다는 것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짓인가를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스스로의 십자가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등등의 생각도 나 스스로에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지 그런 사실들 보다 더 중요하게, 아니 더 두렵게 느껴지는 것들은, 내가 원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 그래서 소설 속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서 신 목사에게 유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모습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나일까 봐 두렵고, 무섭다.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 P257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계속되는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놓여있다.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올바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닌, 절망에 맞서서 계속해서 싸우는 것, 거기에서 얻은 희망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순교자』에 손을 내밀어 본다. 다시 만나는 『순교자』는 나에게 또 어떤 생각을 알려줄 것인지, 새삼 기대된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