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가까운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자존심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심리적으로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혹은 평소에 정말 순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도 그런 공격들에는 반응을 보이는 법이다. 그 반응이라는 것이 간단하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심각한 일들을 낳기도 한다. 단순한 약점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그것을 행한 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그 자체로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끔 -단지 그 맛이 좀 쓰더라도- 하는 말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받아들이는 것이 삐딱해서, 그 결과로 돌아오는 반응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는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누구에게 화살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는 문장으로 『브로덱의 보고서』는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브로덱’에게 사람들은 보고서를 쓰라고 강요한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을 형용하기 위한 단어인 ‘에라이그니스’라고 불려질 ‘그 일’에 대해서 말이다 ㅡ. 그 일이란 것이 ‘안더러’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당장에 그것들을 파악하기에는 힘들 정도의 안개를 쳐놓으면서, 이야기는 브로덱의 보고서로 옮겨진다 ㅡ.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지대로 짐작되는 마을 ㅡ. 그렇다. 그저 짐작 할 뿐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읽다보면 이 글의 배경은 도대체 어느 시기인지, 그 공간은 어느 곳인지 헤매기 십상이다. 시공간을 쉽사리 알아채기 힘든, 그런 마을을 찾아온 낯선 이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다른 사람’ 혹은 ’타자’라는 뜻의 ‘안더러’라고 부른다. 아무 거리낌 없는 그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은 긴장을 하며, 그를 경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그는 마을 사람들이 애써 감추려고 했던 진실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결국에 ‘그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ㅡ. ‘그 일’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마을 사람들은 브로덱에게 하여금 보고서를 쓰게 한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보고서를…. 하지만 그가 남기는 보고서는 진실과 그렇지 않은 것, 두 가지 이다 ㅡ.

‘안더러’의 ‘그 일’과 동시에, 브로덱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다움이 사라진 곳, 겉모습만 인간이고 의식이 없는 짐승들만 머무는 곳에 갇혀, ‘똥개 브로덱’으로 살았던 지난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똥개 브로덱’의 삶도 마다하지 않던 그만이 결국 살아남고, 마을로 돌아온다 ㅡ. 다시 돌아온 그 마을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텐데, 그는 ‘검은 구렁’이라 부르는 암흑으로 가득했던 그 시기를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것은, 쓸데없이 불현듯 기억났기에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역시나 그것은 ‘안더러’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그가 안더러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안더러가 그가 될 수도 있는, 단순함 이상의 관계인 것이다 ㅡ.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게 된다.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그들은 그토록 폐쇄적으로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들의 행동을 일종의 집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의 본성을 흔들어 놓는 공포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일종의 집착 같은 것들 말이다 ㅡ. 그로인해 처음에 피해자였던 사람이, 나중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작은 마을에서는 작은 전쟁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작가의 물음에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브로덱의 보고서』에서 들려주는 인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진실과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름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는 ‘안더러’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간의 체온과는 반대로, 어떤 차가움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결국,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는 순간 느껴지는 인간의 온도 ㅡ.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따뜻한 체온, 따뜻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