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남편과 미인이며 남편 못지않은 학력을 소유한 아내, 그리고 귀여운 그들의 두 자녀 ㅡ. 어디하나 부족해보일 것 없는,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던 이 한 가족이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로부터 1년 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ㅡ.

 

 

 

 

『우행록』은 일가 살해 사건 피해자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형식의 글이다. 부부와 두 아이가 한적한 주택가의 집에서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책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는 이 부부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 이웃 사람, 아내와 함께 요리를 배우던 수강생, 회사 동료, 대학 동기 등을 인터뷰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살해당한 부부의 다양한 모습들을 파악할 수도 있고, 또 직접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로 인해 부부의 주변인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서서히 큰 틀을 맞춰간다 ㅡ.

“3세 여아 영양실조 사망, 모친 체포, 유아 방기 혐의”
라는 짧은 기사로 『우행록』은 시작된다. 하지만 『우행록』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은 무참히 살해된 한 가족이다. 왜, 시작은 살해된 가족과는 상관없는 3세 여아의 사망 기사로 시작되는 것일까?! 각각의 인터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시작부터 의문이 생겨난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많은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쌓여만 간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거의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ㅡ.

궁금증은 계속해서 더해만 간다. 또한 글을 조금씩 읽어나갈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도대체 이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으로 어떤 결론을 도출해내려고 하는 것인지… 보통의 미스터리가 그렇듯,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결국에는 범인을 찾아가는 것이 정석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범인을 찾는 일 따위를 점점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ㅡ.

우행록(愚行錄)
‘어리석은 짓을 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과 일가족 살해 사건이라는 사실만을 놓고 볼 때에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 피해자를 향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런 생각들과 일치해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살해된 부부가 그 대상일수도 있고, 인터뷰이들이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이 책을 읽은 나와 당신들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자신을 중심에 놓고 모든 이야기들을 해나가는 인터뷰이들만을 향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향해 “쯧쯧, 어리석은 것들…….” 이라고 한다면 정작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리라 ㅡ.


 

 

  

 

“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고, 아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의 진실은 하나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무슨 말장난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일어난 사건은 하나인데, 그 사건에 대한 시선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점점 중심으로 이동되어 갈 뿐이다. 그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싶어 하는 것 ㅡ.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인간에게 향하는 것은 분명 비난과는 거리가 있어 보임에는 틀림없을 것이고, 인간을 어리석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인간을 어리석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과 어리석음과는 동의어로 놓여도 결코 반박할 수 없지 않을까?!

『우행록』은 인간 그 자체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나 있고, 결국에는 드러나기 마련인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치밀한 구성과 함께 잘 나타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리석음을 넘어 슬프기까지한 인간의 모습과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한 번 내쉬어 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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