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자신만의 기억으로 재편성된 사실들 ㅡ. 자신만의 생각, 그 중에서도 확신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기억을 정리하면서 사실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어느 것이 상상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것들 말이다. 나 역시도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떤 모호함 속에 가득찬 확신이 존재한다. 난 분명히 어릴 적 서커스를 봤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서커스 공연을 위해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는 공중그네를 타던 사람들의 모습이 선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만의 상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릴 적에 그런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을까?! 현실이었는지, 꿈속의 이야기였는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ㅡ. 『4월의 물고기』가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혼란스럽게만 느껴지는 기억들을…….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낳고, 불신이 또 다른 불신을 낳는 기억들을…….

 



 

윤박사는 말했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모든 인간에겐 자신의 인생이야말로 가장 탐구할 만한 텍스트다.
사실이란, 기억을 통해서 재구성하는 각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p291

 

『4월의 물고기』를 읽기 전, 그저 평범한 혹은 약간의 놀라움이 들어간 그냥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사랑한 여자’라는 문구를 봤기 때문일까, 이야기의 초반부에 서인에게 전달된 -운명을 이야기하는- 의문의 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보면서는 조금 특별한 사랑이야기에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 가미된 정도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런 사랑스러운 판타지라기보다는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적이고 열정적으로만 느껴지던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갑갑하게 하는 난폭함으로 변했다가, 그 난폭함 뒤에 감추어진 의문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나씩 하나씩 맞춰지면서 퍼즐을 풀어낸 것과 같은 재미를 안겨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4월의 물고기』는 추리, 스릴러적인 요소와 동시에 사랑이야기를 함께하는 다양한 장르가 복합된 소설이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독특한 이야기로 낯선 섬뜩함을 안겨주며,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선과 악의 날카로움이 교차되는 순간들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점점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ㅡ.

『4월의 물고기』에서는 선우를 통해 인간 내면의 다양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서인을 통해서는 의도적인 인간 기억의 재편성으로 말미암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선우나 서인, 모두가 지난 기억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연적인, 혹은 운명적인 그들의 사랑 역시 지난 기억에 지배당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비슷한 위치에 놓여있지만 그들의 길을 헤쳐 나가는 방법에는 차이를 보여주며,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마음임을 보여준다. 지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듬어 봐야 하고, 거기에서 한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는 어린 기억 속의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 극복 ㅡ. 결국에는 그 의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묘한-하지만 통속적인- 사랑의 기억들로 이야기하는 인간의 선과 악 ㅡ.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또 다른 현실 속에 놓인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선택의 길에는 무엇이 놓여있는 것인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 보랏빛은 이 이야기 속에서 과연 어떤 느낌을 전해주려 하는 것인지…….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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