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박스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노마와 아서 부부가 사는 집, 현관문 앞에 정육면체 모양의 종이 상자가 놓여있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버튼이 붙은 자그마한 나무상자이다. 그리고 찾아온 한 남자가 말한다. “선생님께서 저 버튼을 누르시면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는, 선생님이 모르는 누군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대가로 5만 달러를 받게 됩니다.” 라고 ㅡ. 마치 장난 같다. 아니 누가 봐도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버튼을 누르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죽을 것이고, 난 그 대가로 5만 달러를 받게 된다는데 말이다. 이기적인 나 같으면 당장 버튼을 눌러 볼 것이다. 장난이라면 당연히 아무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고 해도, 내가 이 버튼을 누르게 됨으로써 누군가가 죽는다는 사실이 직접 확인되지는 않으니-아마도 그럴 것이다-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또한 만약 누군가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나의 일상과는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막말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노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그녀는-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자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의 한 마디를 듣게 될 것이다. 어떤 한마디냐고?! 그건 직접 봐야하는 것이지. 살짝 힌트를 준다면, 얼마 전에 읽은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를 떠올리게 한다고 할까?!

이상은 리처드 매드슨의 『더 박스』에 수록된 10가지 이야기 중 하나인 「버튼, 버튼」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이 책은 10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모두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나같이 독특하고, 기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거기에 잔인함마저 묻어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에 따라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후회하게 되는 순간들. 그런 순간에 시꺼먼 옷을 입은 섬뜩한 느낌이 드는 남자가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씨익~ 웃고 있는 듯 한 느낌말이다 ㅡ. 이 책 속에 담긴 각각의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똑같이 이러한 느낌을 안겨준다.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감탄하면서도, 그 상상력의 바탕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씁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더없이 우리의 오늘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일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이라기보다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오늘날에도 있고, 미래에도 존재할 인간이라는 이름의 양면성-그중에서 특히 어두운 부분- 때문일까?! 그 어떤 존재보다도 스스로를 고귀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속을 뒤집어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들의 모습 ㅡ.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속마음을 조롱 섞인 이야기들로 옮겨놓은 것 같아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ㅡ.

언제부터인가 ‘반전’이 너무 흔하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지금까지의 흐름과 다른, 그냥 뒤통수만 한 번 후려갈겨주는 것이 반전이라고 굳어져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리처드 매드슨은 보여준다. 진짜 반전은 이런 것이라고 ㅡ. 반전으로 이야기의 내용만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게 하는 힘 ㅡ.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그 반전으로 자신의 삶도 반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힘 ㅡ. 그런 힘을 가진 작가가 바로 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힘을 『더 박스』를 통해 더없이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짧지만 강한 그의 이야기들을 직접 만나 보시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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