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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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정리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


 

학창시절의 수학시간 ㅡ. “a²+ b²= c²” 이라고 무작정 공식을 외우던 그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ㅡ. 유명하니까 시험에 잘 나오니까 무작정 외웠고, 실제로 많이도 써먹었다. 많이 사용해서인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라서인지 아직까지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분명 수업시간에 공식을 외우기 전에 증명하는 법도 배웠을 텐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공식만 외우면 된다는 생각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일수밖에 없겠지만.. 한 문제라도 더 풀 수 있는 공식만 있으면 된다는 기계적인 생각이 수학이라는 과목을 더 재미없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지루하고 머리만 아팠던 그때의 그 수학시간에 배웠던 ‘피타고라스의 정리’, 그리고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무리수라는 개념 등이 지금에 와서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천년의 침묵』을 통해서 말이다 ㅡ.

어느 날, 바닷말과 그물이 한데 뒤엉킨 시신이 발견된다. 그 시신은 현자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수학하던 디오도로스이다. 모두가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동생 아리스톤이 보기에는 분명 타살이다. 모두가 침묵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는 형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원인을 직접 알아내기 위해 의원직을 버리고 학파에 입문하게 된다. 그 속에서 하나씩 음모와 진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음모와 진실들을 둘러싼 권력과 욕망,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ㅡ.
 

  

“자네 변했구먼. 세상과 세월이 자네를 변하게 한 건가?
지식은 그 자체로서 빛날 때 참된 진가가 발휘되는 거라네.
권력의 손을 잡은 지식에선 악취가 나기 마련이야······.” - P268

 

진리라는 것을 찾아 헤매던 젊은 열정이 어느덧 권력을 맛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 스스로를 진리라고 생각하고 믿게 되어버린다. 지식이 온전히 지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뭔가와 결합되어버려 본연의 빛 자체를 잃어가는 모습들이 피타고라스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와는 반대로 휘어질 줄 몰라 부러지는 길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디오도로스를 통해 볼 수 있다. 무엇이 정답일까?! 아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웃긴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길을 보여주는 피타고라스와 디오도로스, 그 누구도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 역시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 어느 쪽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피타고라스와 디오도로스 외에도 권력을 쫓아서, 사랑을 쫓아서, 혹은 자신만의 안위를 쫓아서 방황-그렇게 표현하고 싶다-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그들 나름대로는 스스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뿐인 사람들 ㅡ. 그 사람들 속에, 『천년의 침묵』 속의 방황에 나를 던져본다 ㅡ.

 



 

문제가 제기되는 한, 그 분야는 살아있다.
문제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인 발전이 멈추어 있음을 뜻한다.

- 이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독일의 수학자)


 

순간순간 내게 던져진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지금 당장보다는 앞으로의 세상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겠지만, 이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 언젠가는 크게 빛을 발한다는 생각을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힘이 난다고 해야 할까?! 따라서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의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 속의 디오도로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유지시키는 어떤 것들이, 어쩌면 정말 빈틈없이 잘 맞아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조금씩 어긋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흔히 의심이나 회의라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들도 좋게만 사용한다면 꼭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ㅡ. 문제가 제기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비록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또 다시 사회가 바뀌어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도 권력을 휘두르는 소수의 존재들 ㅡ. 그 존재들이 지금도 이 사회를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겉으로만 올바른 척 겉으로만 정당한 척 ㅡ. 그런 식이라면 그들도 언젠가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마지막과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

다분히 수학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 때문에 지루하지 않을까, 쓸데없이 머리만 복잡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비록 오래 전 수학과 관련된 한 문장에서 시작된 소설이지만, 살인사건의 해결을 따라가는 스토리의 흐름에 더해진 음모, 권력 간의 관계, 상하 구분지어진 사회 구조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점들을 껴안으면서, 오늘날의 모습들을 더없이 잘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이라는 학문,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앞으로도 분명 반복될- 권력, 재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욕망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기란 쉽지 않음일 임에도 쉽게 잘 나타낸 것만 같다.『천년의 침묵』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무너뜨려 묘한 느낌을 주지만, 더 없이 현실을 잘 담아낸 소설’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멋진 작품이 이선영 작가의 시작이 되는 작품이라니 더 없이 놀랍고도 반갑기만 하다. 처음이기에 -냉정하게 말해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후 조금씩 더 가다듬어지는 그녀의 글을 만날 생각을 하니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 ㅡ. 다음에는 어떤 첫줄의 설렘을 안고 나타날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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