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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 꼭 해야 할 것’이라는 나만의 목록을 작성했었다. 그냥 규칙도 없이 그 당시에 바로바로 생각나는 것들을 막 적어나간 그 목록의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름이 “Fez”였다 ㅡ.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도 아닌, 우리에게 보다 유명한 카사블랑카도 아닌 페스가 왜 가장 먼저 생각났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도시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이름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모로코-도시가 아닌 나라의 이름마저도 낯설다-라는 나라의 한 도시이며, 가죽 염색 공장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사실뿐인데 ㅡ. 모로코의 가죽 염색 공장, 그마저도 사진을 통해서 몇 번 만나봤을 뿐인데, 왜 그곳이 가장 먼저 생각났을까?! 그 이유 없는 끌림이 나를 당장 페스로 떠나게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페스의 집』을 만날 수는 있었다.
『페스의 집』이라는 제목을 보고, 책의 표지에 있는 “‘중세의 도시’페스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부부 저널리스트!”라는 문구를 보고 단순히 어느 부부가 페스에서 집을 구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여행이 아닌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모로코의 페스는 어떤 느낌일까, 그들이 페스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세상은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한 삶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한 부부가 페스에서 집을 구하고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가 페스의 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수전나와 샌디 부부가 페스에서 집을 사고 그 집을 보수하면서 제대로 된 보금자리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ㅡ.
그렇다면 온통 이야기가 ‘페스의 집’이야기에만 쏠려 있느냐?! 그렇지는 않다 ㅡ. 『페스의 집』은 우리가 잘 모르는 모로코 - 페스로 향하는 길의 시작이 된다. 여행자가 바라보는 시선도 아니고, 그들의 삶에 이미 침투한 사람들의 시선을 통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 중간쯤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여행자에서 이제 삶의 일부로 들어가는 경계에 서있는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이다 ㅡ. 『페스의 집』은 수전나와 샌디가 집을 보수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로 페스를 이야기한다. 가까운 이웃들을 의심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페스 사람만의 특징들에 힘들어하고, 그들만의 다양한 문화와 관습에 부딪히고, 또 적응해가는 모습들, 그러면서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그들 또한 또 다른 문화의 일부가 되어가는 순간순간의 기록들이 담겨져 있다. 그렇게 우리는 모로코와 페스를 알아가는 것이다 ㅡ.
우리는 자주 낯선 나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것은 일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시작되지만, 우리가 찾아가는 곳도 결국은 또 다른 이들의 일상 속이다 ㅡ. 그런 사실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기 때문일까?! 이제는 단순한 일상의 벗어나 -처음부터- 또 다른 일상을 꿈꾸게 된다. 혹은 지금의 일상은 그대로 놔두고 또 다른 -제2의- 일상을 만들기도 한다. 『페스의 집』처럼 말이다 ㅡ. 단순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든, 새로운 일상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든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새로움은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니 만큼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책 속의 부부는 그런 후회 없는 선택, 누구나 꿈꾸는 집을 위해 뭔가 행동을 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나도 꿈만 꾸고 있을 것인가?! 꼭 어딘가로 떠나서 새로운 집을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페스의 집』만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후회 없는 어떤 선택을 위해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