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래스호퍼(Grasshopper) ㅡ.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메뚜기, 유재석?! 음.. 사과의 말씀부터.. 그래, 썰렁했음을 인정한다. 그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유쾌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 『그래스호퍼』는 그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ㅡ. 죽음이라는 큰 이야기가 그 중심에서 그것이 암시하는 듯 한 검은 색과 함께 존재한다. 그렇게 뭔가 음침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ㅡ. 다양한 방식으로 살인을 하는 다양한 킬러들이 등장하고, 살인이 자살로 바뀌는 순간들이 나타나고,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ㅡ. 

 

“초록색 메뚜기라 할지라도 무리 속에서 치이다 보면 검어지게 마련이지.
메뚜기는 날개가 자라 멀리 달아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소. 그저 난폭해질 뿐.” - P 214

메뚜기가 이렇게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도 처음이고, 메뚜기를 통해 인간을 그와 비교해 어둡게 나타나는 표현도 처음으로 봤다. 동물이 아닌 곤충에 비교당하는 인간 ㅡ.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면 그렇게 놀라울 일도, 기분나빠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거기에 충격 받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만 할 뿐 ㅡ. 

세상천지에 거무튀튀한 메뚜기뿐이다. - P 325

『그래스호퍼』는 세 남자, 그들 각각의 시선과 생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ㅡ. 이야기마다 시점이 옮겨 다니는 것이다. 《“복수할 기회를 빼앗겨? 그게 말이나 돼?”_ 스즈키》 범죄 가득한 조직이자 회사인 ‘영애’에 입사하게 되는 스즈키. 그는 사장의 문제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죽인 아내의 복수를 위해 입사했다. 일단은 그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면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얽히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싶어 한다. 나는 그들을 도와줄 뿐.”_ 구지라》 구지라(고래)라는 이름에 걸맞게 덩치가 큰 사내로 자살 유도 전문가인 구지라. 많은 이를 자살의 길로 몰아넣은 그는, 현재 망령들의 모습과 목소리에 삶이 흔들리고 있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이제는 지금까지의 삶을 청산하고자 한다. 그 청산과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기위해 또 다른 사건에 얽히게 된다. 《“일가족 몰살. 그게 내 특기라니까. 그 집, 이제 임자 만났네.”_ 세미》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일가족을 몰살하는데 전문인 세미. 인형이 아닌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하는 생각으로 또 다른 사건에 얽히게 된다. 그렇게 스즈키, 구지라, 세미는 제각각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시작한 일들로 인해 한 사건에서 서로가 물고 무는 형태로 만나게 된다 ㅡ.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개인의 문제다.
아내의 원수만 갚을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다. - P436 

전혀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각 자의 길이 한 곳에서 만난다. 많은 킬러들이 등장해서 일까?!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죽음을 떠올린다. 일가족을 몰살시키고, 자살을 유도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물론 그 순간이 다를 뿐이지 결국에는 그것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모습들에서, 정말 큰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를 느낀다고 해야 할까?! 그런 사회의 문제도 결국은 개개인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선악의 문제를 따질 것이 아니고,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 사회를 물들인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정치, 사회, 경제 곳곳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고 말이다 ㅡ.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이 결국, 사랑이고 희망이라는 것이다 ㅡ. 그렇게 이사카 고타로는 이야기 한다 ㅡ. 



 “동물한테 왜 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느냐고 물어봐.
분명히 이렇게 대답할걸.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 P175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의 인기를 실감하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그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 이제서라도 이렇게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멋진 작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의 기본적인 생각들이나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유머는 내 스타일과 비슷한 것 같다. 『그래스호퍼』라는 이 작품도 크게 심장을 조마조마 하게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은 느껴지지 않지만, 읽는 내내 끝까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결정적인 순간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그런 장치들로 -미묘하게 알아챌 수 없도록- 장착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을 읽기 전, 책장을 덮으며 “재미있다”는 신음소리를 낼 수 있기를 소망했고,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가슴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했고, 어떤 인생이라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이사카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느끼기를 소망했었다. 그리고 이제 책장을 덮으며 그 소망들이 현실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ㅡ. 이사카 고타로, 그가 스스로 “작가로서 가장 큰 성취감을 준 작품이다!”라는 말로 나타낸 그 자신감을 직접 만날 보길 추천한다 ㅡ. 어쩌다 보면 당신도 그냥 그렇게 그의 팬이 될지도 모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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