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Euro - 가난한, 그러나 살아있는 219일간의 무전여행기
류시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돈과 시간을 생각했다. 아니, ‘했다’가 아니라 ‘한다’고 해야겠다. 지금도 여전하니까 말이다. 오랜 여행을 꿈꾸면서도 돈에 발목 잡히고, 현실에 발목 잡힌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살면서 꿈꾸던 여행의 스케일도 점점 현실에 맞춰짐을 느낀다. 남미 쪽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제3세계라는 사실에,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앞서게 되고, 유럽 쪽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돈이라는 또 다른 큰 벽 앞에 무릎 꿇게 되는 현실에서 여행마저도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적은 비용으로 일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생각들.. 시간은 일단 제쳐두고, 왜 꼭 돈이 제일 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돈이 없어도-물론 최소한, 정말 최소한의 경비는 있어야 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말이다 ㅡ. 그렇게 나의 짧은 생각에 돌을 던진 책, 『26Euro』를 만났다 ㅡ.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관광보다는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이 좋다. 앞사람 뒤통수와 깃발만 보고 따라다니는 패키지보다, 맘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가 좋다. 근데 이건 너무한다. 배낭을 메고 떠나긴 하는데, 돈은 없단다. 맘껏 돌아다닐 수도 있는데, 일정은 자기도 모른단다. 이 얼마나 대책 없는 여행인가?! 근데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왜일까?!
『26Euro』는 저자가 26유로와 비행기 편도 티켓만 달랑 들고 떠난 219일간의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건 그냥 평범한 여행도 아니고 무전여행이다!! 론리 플래닛이나 100배 즐기기 같은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곳을 직접 찾아다니고, 누군가가 이끌면 이끄는 대로, 그냥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둥~둥~ 떠다니는 여행이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제대로 된 여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를 찾아 돈을 내고 구경을 하는 것도 분명 매력적이긴 하겠지만, 낯선 나라에서 보다 그들을 가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여행이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관점으로는 그렇다 ㅡ.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여행을 『26Euro』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한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간접적이었기에 더없이 부러운 시간이 되기도 했었다 ㅡ.
.. 내 여행이 틀린 건 아니야.
보통 사람들과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다르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니까. - P200
우리는 일상에서 ‘틀린’것과 ‘다른’것을 정확히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뜻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지는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다른 세상 속으로 -그것도 아주 깊숙하게- 파고드는 여행은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생각된다. 돈 없이 다니는 것이 좀 꾸질꾸질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ㅡ. 하지만, 꾸질 꾸질 하다고해서 절대 틀린 것은 아니다 ㅡ. 단지 다른 이들과 그 과정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런 식의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이란 것이 위험과는 조금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위험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ㅡ. 집에서나 밖에서나,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항상 우리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를-혹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은 위험이 있기에 그 위험 뒤에는 더 많은 어떤 것이 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다. 저자가 그랬듯이, 앞으로의 나, 혹은 당신이 선택한 길은 원망도 책임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간다. 원망이나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 보다는 그 선택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은 만큼의 노력을 했듯이 말이다 ㅡ.
시작에서도 그랬지만 끝에서도 이 책은 나에게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저자의 멋진 경험, 멋지면서도 많은 외국 친구들을 가졌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또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도전과 그 열정이 부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커나가는 그의 삶이 부러웠다. 부러워만해서 될 것은 아니지만, 부럽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ㅡ. 그 부러움을 안고 다시 시선을 나에게도 향해 본다 ㅡ. 나의 열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