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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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잃어버리다”“잊어버리다”의 차이는 학창 시절에 수없이 들어서 잘 알 것이다 ㅡ. “잃어버리다”는 가졌던 물건이 없어져 그것을 아주 갖지 아니하게 되거나,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잊어버리다”한번 알았던 것이나 기억해야 할 것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거나 전혀 기억하여 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적으로는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사용법 또한 잘 알고 있는 것을, 현실에서는 왜 헷갈리기만 할까?! 내 기억 속-혹은 사라진- 의 모든 것들이 잃어버림과 잊어버림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기억은 스틸 사진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더러워진 만큼 교묘하게 각색되고 수정되며, 

때로는 황당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 P124 

 

 인간의 기억이 그 어느 것보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경우-그 순간만의 감정이나 느낌 같은 것들?!-도 물론 있기는 하겠지만, 인간의 기억만큼 불확실하면서도 믿지 못할 것이 또 있을까?! 이제는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조차도 모호해지는 기억들을 담은 이야기가 『가스미초 이야기』에서 펼쳐진다 ㅡ. 도쿄의 지도에서 사라진 「가스미초」안개마을이라는 그 뜻 그대로 안개가 길을 따라 천천히 떠다니는 곳이다. 실제 그 마을의 이야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희미하고 불확실한 기억을 또 다른 마을에 옮겨놓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기억은 희미하다. 『가스미초 이야기』에는 모두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단편이지만 제각각 모두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분 지어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두「이노」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학창 시절의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가족이야기 ㅡ. 명사진사로 이름을 날리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애제자이자 사위인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이제는 더 먼 기억 속의 인물이 되어버린 할머니와 삼촌을 통해 나타나는 가족, 그리고 사랑 이야기ㅡ. 

 잔잔하면서도 재미있고, 또 아름답게 다가온다. 글이 그렇고 글 속의 카메라와 사진이 그렇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무슨 노래 제목 같지만-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까지 안겨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서 그리움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 ㅡ. 그 그리움은 누군가를 향한 동경일수도 있고, 기억 속의 먼 곳을 향한 향수 일수도 있을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틀림없는 그리움이다 ㅡ. 

 

 움직이는 것은 천 분의 1초씩 멈춰 있는 것의 연속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한순간도 낭비해서는 안돼요. 

천 분의 1초의 멈춰 있는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거니까요.  - P260 

 

 우리의 삶이 순간이 살아 숨 쉬는 사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멈춤의 연속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 속의 글처럼 멈춰있는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 멈춤이 이제는 과거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기억 속의 이야기가 이제는 현실로 바뀌어야 할 때다 ㅡ. 무수한 삶의 다짐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현실 앞에서, 과거의 연결고리를 더더욱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ㅡ. 「아사다 지로」가 여기에서 그린 아름다운 그리움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말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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