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든 페이스
살바도르 달리 지음, 서민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판하는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예상외의 깜짝 놀랄만한 글 솜씨(혹은 멋진 그림이나 사진으로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ㅡ.)로 나의 선입견이자 편견에 한 방을 먹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실망을 안겨주고는 했다. 만약 그들이 연예인이라는 ‘유명’타이틀이 없었다면 과연 책을 낼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끔 말이다. 그런 입장에서 바라본 「살바도르 달리」의 『히든 페이스』는 적어도 그의 이름만을 팔아서 쓴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시작과 동시에 기대이상의 섬세한 묘사가 펼쳐진다. 한 사물 -하나씩 하나씩 벗겨 누드로 만든다는 느낌 때문일까?! 단순히 사물이라고 하기 보다는 누드모델을 앞에 둔 느낌이다- 을 눈앞에 두고 작은 것까지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림을 그린다. 아니, 그림이 아닌 글로써 그린다. 눈앞의 사물 -혹은 사람- 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표현하는 데에도 탁월한 실력을 과시한다. 전쟁이라는 긴박함 속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여유로움을 넘어선- 나태함. 그 속에 놓인「그랑드살레 백작」, 「마담 솔랑주」, 「벳카」와 「베로니카」라는 인물을 통해 욕망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ㅡ. 그 누구나 그렇듯 사람의 마음속은 상당히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나 자신의 마음도 모를 때가 더 많듯이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살바도르 달리」의 현실을 벗어난 듯 보이는 그의 성향은 -천재이든 미쳤는 것이든 상관없이- 더 없이 사람의 마음의 표현에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지은이의 말에서 그는 사디즘, 메조히즘과 나란히 하는 -쾌락과 고통의 승화된 개념이라는- 클레달리즘을 만들 것이라 단언했다. 그리고 속도라는 광기에서 벗어나 그에 역행하는 길고도 지루한 ‘진짜 소설’을 쓸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들이 제대로 실현된 것인지 나로서는 감히 판단하기 힘들지만, 「살바도르 달리」라는 인물의 자신감에서 비롯한 현실 타파의지(혹은 그 의지에서 비롯한 자신감인가?!)는 가히 본받을 만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솔직히 말해서, 「살바도르 달리」라고 하면 단순히 초현실주의의 화가라는 사실 밖에 몰랐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으니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지만 ㅡ.) 이 책을 계기로 그의 작품들도 찾아보게 되었고, 그의 생각들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림으로만 만났다면 전혀 감을 잡지도 못했겠지만, 단 하나의 그림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써 읽게 만들어 준 덕분에 그래도 조금은 그를 알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평범하지만은 않은 그의 글과 그림을 통해 세상을 한 단계 뛰어넘으려는 그의 투쟁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히든 페이스』가 우울한 현실을 글로 그렸다면, 그 뒤에 남겨진 세상은 희망만이 남아있는 힘찬 내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ㅡ.